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인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까지 15조8367억원(연결 기준)의 당기 순이익을 냈다. 하지만 올해 사업 재편을 벌이면서 직원 수와 인건비는 오히려 줄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현재 9만9556명이었던 삼성전자 임직원 수는 올 3분기 현재 9만8557명으로 1000명 줄었고, 연간 총 급여도 6조원가량에서 5조8281억원으로 1000억원 이상 감소했다. 1인당 평균 임금도 6100만원에서 5900만원으로 뒷걸음질쳤다. 대신 삼성전자는 이익 대부분을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에 쓰고 있다. 삼성전자는 앞으로 3년간 11조3000억원어치의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는 등 2017년까지 연간 잉여 현금 흐름의 30~50%를 주주 환원에 쓰겠다는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가계소득 증대방안으로 야심차게 추진했던 '기업소득 환류세제'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지만, 당초 기대했던 가계 소득 증대 효과는 사실상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정부는 기업에 쌓여 있는 돈이 가계로 흘러가 소비와 내수가 살아나는 선순환을 기대했지만, 마땅히 투자할 곳도 없고 인건비 부담이 늘어날 것을 우려한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대신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가계소득·투자 제자리, 배당·자사주 매입만 껑충

기업이 막대한 유보금을 쌓아놓고도 고용·투자·배당 등 이익 환원에 소홀하다는 비판이 최근 몇 년간 제기되자 정부는 경제활성화 방안으로 기업소득 환류세제를 도입해 올해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자기자본 500억원이 넘는 대기업의 당기소득 80%(제조업 기준) 중 고용·투자·임금에 쓰지 않고 남은 돈에 대해 10%의 세금을 물리는 제도다. 제도 도입 당시 최 부총리는 "온 국민이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3년짜리 한시법이 도입된 첫 해인 올해 가계소득 증가 조짐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통계청 가계 동향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가계소득 증가율은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0.7%(전년 동기 대비)에 그쳤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가계소득이 제자리인 셈이다. 이는 가계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임금 인상에 기업들이 매우 인색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전국 5인 이상 사업체 전체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2014년 338만5000원에서 올해 9월 현재 321만4000원으로 오히려 하락했다.

투자 역시 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유·무형 자산 취득액은 올 3분기까지 936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2% 증가하는 데 그쳤다. 대신 기업들은 현금 대부분을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쓰고 있다. 상장사 중간배당액은 지난해 전체 4420억원에서 올해 1조447억원으로 배 이상 늘었다. 상장사들의 자사주 취득 규모(공시 기준)도 지난해 전체 5조원에 그쳤으나, 올해는 11월 현재 이미 9조원을 넘어섰다.

"투자·고용 늘릴 추가 대책 필요"

주주 이익 보호에 소홀하기로 악명 높았던 한국 대기업들이 기업소득 환류세제를 계기로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늘린 것은 그나마 긍정적이지만, 본래의 취지인 가계소득 증대의 목적은 달성되지 못하고 있다. 이 제도의 대상이 되는 대기업은 특히 대주주와 외국인 주주의 비율이 높아 개인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적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예견된 결과'였다는 지적이 많다. 기업소득 환류세제의 설계 목적이, 기업이 세금을 더 내느니 임금을 높이고 투자를 많이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지만, 애초부터 기업들 사이에선 선뜻 따르기 힘들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임금은 한번 올리면 낮추기 힘들어 조심스러운 데다, 현재 경기 상황에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힘들다는 얘기였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동향분석실장은 "기업이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게 불필요한 규제를 해소해주고, 고용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등 다른 제도와 노력이 병행돼야 당초 제도 설립 취지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소득 환류세제

기업이 임금·투자·배당에 쓰지 않고 남긴 이익에 대해 과세하는 제도. 기업이 쌓아둔 이익을 외부로 돌려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