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순·'연평해전' 영화감독

영화 '연평해전'과 관련된 강연을 종종 한다. 최근에 강연이 끝나고 질문을 받는데 객석에 있던 어느 어머니께서 마이크를 들었다. 대학교 1학년인 아들이 있는데, 전에는 그동안 여러 얘기로 인해 군대 가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연평해전'을 보고 난 후 집에 오더니 "이제 군대 가면 전쟁이 나더라도 분명히 자신의 몫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그 말을 전해 듣는 순간 나는 전율을 느꼈다. 한 편의 영화가 다른 사람의 생각과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험한 것이다. 어머니 역시 "그렇게 말하는 아들이 자랑스러웠다"며 그 영화를 만들어준 것에 감사를 표했다. '연평해전'이 아들의 생각을 변화시켰고 삶에 대한 판단력을 갖게 도와줘 고맙다고 했다.

여느 청춘처럼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던 내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였을까 생각해봤다. 중학교 국어 시간이 생각난다. 교실 창밖을 바라보며,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간다…"를 읊으시던 국어 선생님. 그 선생님은 장난꾸러기에 우물 안 개구리였던 소년에게 문학적 감성을 불러일으켰고 상상력을 심어주셨다. 그 이후엔 도스토옙스키, 헤밍웨이, 베토벤, 모차르트, 밥 딜런, 반 고흐, 마틴 루서 킹, 존 F. 케네디, 원효…. 이들 모두는 내가 열정적인 삶과 예술에 몸을 푹 담글 수 있도록 부채질해주신 은사이며 멘토이다.

한 사람의 생각이나 인생은 다른 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때로는 무섭다. 좋은 방향으로 힘이 되어줄 수도 있고 나쁜 방향으로 짐을 안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대중적인 문화로 꼽힌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상업성을 떠나 사회적 책임도 따르는 일이다. 강연장에서 어느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새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