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로 만든 원지, 9단계 공정 거쳐 돈으로 탄생
화폐 생산 수익성 떨어진 조폐공사, 사업 다각화 나서

지난 27일 경상북도 경산시 화랑로 인근. 수확이 끝난 논밭은 황량했고, 추운 날씨 탓에 드문드문 들어선 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도 뚝 끊겨 있었다. 이렇다 할 표지판도 없이 버스는 어느새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 앞에 정차했다.

돈을 만드는 공장인 화폐본부는 국내에서 보안 등급이 가장 높은 '가급' 국가 보안시설로,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이 없다. 화폐본부에 들어가기 전 버스 안에서 기밀을 누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해야 했다.

지금의 화폐본부 공장은 지상에 있지만, 2008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화폐 공장은 지하에 있었다. 전쟁이 나거나 시설이 폭격을 받아도 화폐 공급은 계속 돼야 하기 때문에 지하 벙커 시설로 운영된 것이다. 지금은 그 지하 시설이 모두 메워졌고, 2009년부터 지금의 지상 공장이 운영되고 있다.

원지에 바탕이 인쇄된 상태의 화폐. 위변조를 방지하기 위한 형광 잉크가 사용됐다.

담당자의 지문을 인식해야 문이 열리는 화폐 공장 안, 공장 안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공장 곳곳에 쌓여있는 지폐 전지권 묶음이었다. 5만원권의 경우 전지 한장에 28장(가로 4장×세로 7장)의 지폐가 붙어있는데, 이런 전지권이 어른 허리까지 오는 높이로 쌓여 있는 묶음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화폐본부는 충남 부여군에 있는 제지본부로부터 화폐 원지(原紙)를 받아 우리가 쓰는 지폐를 생산한다. 목화를 원료로 한 지폐 원지는 총 9단계의 공정을 거쳐 우리가 쓰는 지폐로 탄생한다. 먼저 100% 면(綿)으로 만든 원지에 돈의 바탕(지문)을 인쇄하고, 4~5일 정도 말린 뒤 스크린을 인쇄한다. 그리고 화폐 위조와 변조를 방지하기 위한 홀로그램을 부착하면, 요판 인쇄를 통해 화폐 뒷면과 앞면을 완성한다. 여기까지 과정을 거치면 육안으로 봤을 때 우리가 돈이라고 하는 모습이 거의 갖춰진다.

다음 단계는 화폐 인쇄 상태를 점검한다. 이 작업은 기계가 담당한다. 전문가가 봐도 집어내기 어려운 미세한 인쇄 불량을 찾아낸다. 기계가 잡아낸 불량품은 적합한 과정을 거쳐 폐기된다. 이 과정을 통과한 이후에 지폐번호가 찍히게 되고, 다시 낱장의 점검을 거친뒤 전지권을 한장한장 잘라내면 비로소 우리가 사용하는 돈이 된다. 이렇게 한 장의 돈을 만드는 데만 꼬박 40일 정도가 걸린다.

지난 2008년까지만 해도 매년 10억장을 찍어내던 화폐본부의 지폐 발행량은 5만원권이 발행되기 시작한 2009년부터 실적이 반 토막 났다. 이후 화폐 생산량이 늘어나긴 했지만, 그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지난해에도 6억7000만장에 그쳤다.

인쇄가 완료된 5만원권 전지권을 담당자가 검사하고 있다. 40일 동안 9단계의 인쇄 과정을 거치면 비로소 우리가 사용하는 지폐가 완성된다.

한국조폐공사의 이익도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신용카드와 5만원권 사용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은행권 사업이 절반으로 줄었고, 수표 사업도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올해 지폐 생산량이 7억4000만장으로 늘어나긴 했지만, 예전처럼 화폐 제조에만 기댈 수 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에 조폐공사는 골드바와 기념주화 판매, 은행권과 동전 수출, 화폐 위변조 기술 활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조폐공사가 내놓은 골드바는 지난해부터 판매가 시작됐고,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서도 조폐공사 골드바가 수출됐다. 기념주화와 기념메달 생산도 늘어나고 있다.

조폐공사는 또 페루나 인도, 인도네시아 등의 화폐를 생산해 수출하는가 하면 화폐 위변조 방지 신기술을 민간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런 위변조 방지 기술은 공인기관의 시험증명서나 기업 보안문서 등에 유용하게 활용된다.

김화동 사장은 "특수 잉크 혹은 특수 홀로그램을 사용하거나, 현재보다 넓은 은선을 인쇄하는 방법, 또는 지폐 중간에 비닐을 넣어 제작하는 등 화폐의 위변조를 방지하기 위해 여러가지 기술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