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오일머니' 때문에 아시아 스포츠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중동 국가들이 막대한 돈을 주고 세계 정상급 해외 선수를 대량으로 귀화시키는 바람에 국가대표 대결의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한국 남자 핸드볼도 오일머니의 희생양이 됐다. 한국은 26일 카타르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아시아 예선 4강전에서 카타르에 26대30으로 패했다. 이로써 대회 우승팀에 주어지는 올림픽 본선 직행 티켓을 놓쳤다. 한국은 27일 바레인과 치를 3~4위전에서 무조건 이겨야만 올림픽 진출 희망을 이어갈 수 있다. 이번 대회 3위 안에 들어야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얻기 때문이다. 한국은 2000 시드니올림픽부터 2012 런던올림픽까지 4회 연속 올림픽 본선에 진출했었다.

'오일머니 벽'에 막힌 한국 핸드볼 - 26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남자 핸드볼 아시아 예선 4강전. 한국의 박중규(왼쪽)가 슈팅을 날리고 있다. 박중규 주변에 모여 있는 카타르 선수 3명 모두 귀화 선수다.

카타르는 작년 인천아시안게임 결승에 이어 또다시 한국에 승리했다. 역대 전적에선 한국이 11승2패로 압도하다가 2연속 패배를 당한 것이다. 선수 구성을 보면 "이 팀이 카타르 팀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이번 대회 엔트리 16명 중 자국 선수는 단 1명뿐이고 나머지 15명이 귀화 선수였다. 출신 국가도 프랑스 쿠바 스페인 등 11개국이나 된다. 세계선수권 '베스트 7' 수상 경력이 있는 라파엘 카포테(쿠바 출신)와 자르코 마르코비치(몬테네그로 출신) 등 면면도 화려하다. 감독은 2013 세계선수권에서 스페인의 우승을 이끌었던 발레로 로페스다.

중동 산유국인 카타르는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7만8829달러(약 9065만원)로 세계 3위(2015년 10월 IMF 발표 기준)인 부국(富國)이다. 하지만 인구는 약 220만명 정도뿐이어서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다. 카타르는 '2006 도하아시안게임' 유치를 계기로 하마드 빈 칼리파 알타니 당시 국왕부터 앞장서 귀화 정책을 폈다.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카타르는 귀화 선수에게 고급 아파트와 십수억원 연봉을 제공하는 등 막대한 부를 안겨준다.

카타르를 중심으로 물꼬를 튼 중동 국가의 귀화 선수 영입은 아시아 육상 판도까지 바꾸고 있다.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은 "아시안게임이 아니라 아프리칸게임"이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육상 금메달 47개 중 15개(32%)를 케냐·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출신 중동 선수들이 휩쓸었기 때문이다. 카타르처럼 귀화에 적극적인 바레인이 육상에서 중국(금15)에 이어 가장 많은 9개 금메달을 가져갔다. 현재 남자 100m 아시아 신기록(9초91) 보유자도 순수 아시아인이 아니라 나이지리아 태생의 페미 오구노데라는 카타르 귀화 선수다.

오일머니 '갑(甲)질'이 심해지자 일부 스포츠 단체는 귀화 선수의 활용을 제한하고 있다. FIBA(국제농구연맹)는 2000년대 들어 레바논, 요르단 등이 미 프로농구(NBA) 출신 미국 선수를 적극 수입하자 2006년 "귀화 선수는 엔트리에 1명만 등록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FIFA(국제축구연맹)는 2008년 '귀화 선수가 최소 2년간 해당국에 거주해야 A매치에서 뛸 수 있다'는 기존 거주 규정을 5년으로 강화했다. 하지만 육상이나 핸드볼, 탁구, 아이스하키 등은 여전히 귀화 선수 출전에 별다른 제약을 두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