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 지주회사인 ㈜LG로 이동해 그룹 차원의 신성장 동력 발굴을 책임진다. LG전자는 구 부회장의 이동 이후 부회장급 최고경영자(CEO) 없이 정도현·조준호·조성진 3명의 사장이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회사를 이끄는 경영 실험을 한다.

LG그룹은 올해 인사에서 전체 임원 승진자를 지난해에 비해 소폭 줄였으나 사장급 이상 승진자를 두 배 넘게 늘렸다. 계열사 간 연쇄 이동을 통해 최고경영자를 물갈이했다.

LG그룹의 ㈜LG·LG전자·LG디스플레이·LG화학·LG생활건강·LG하우시스 등은 26일 일제히 이사회를 열고 올해 정기 임원 인사를 확정 발표했다. LG유플러스·LG CNS·LG상사 등은 27일 임원 인사를 한다. 재계에선 “LG가 신상필벌(信賞必罰) 인사 원칙을 적용하고 계열사 간 사장급 이동을 통해 분위기 쇄신을 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본준 부회장, 신성장사업단장 맡은 이유

올해 인사에서 최대 관심사는 구본무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의 거취였다. 그는 당초 LG전자 CEO를 계속 맡으면서 ㈜LG에 신설된 신성장사업추진단장도 겸임할 게 유력한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최종결정 직전에 신성장사업단장만 맡기로 결론이 났다. 그는 LG전자 등기이사를 유지하면서 당분간 이사회 의장을 맡는다.

구 부회장의 지주사행(行)에 대해 두 가지 분석이 나온다. 하나는 오너 경영인을 투입해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출했다는 것이다. 그가 과거 LG필립스LCD 대표이사 시절 디스플레이 분야의 성장 동력을 마련했고 LG전자에서도 자동차 부품과 B2B(기업 간 거래) 사업에 진출하는 발판을 놓았다는 이유에서다.

LG그룹 관계자는 “구 부회장이 IT·화학·자동차 등 업종을 불문(不問)하고 새 시장 창출을 지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구 부회장이 대표이사를 맡은 최근 5년간 LG전자 실적 악화에 책임을 물었다는 관측이다. LG전자는 2009년 1조4125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으나 구 부회장이 선임된 2010년 1조1046억원의 적자를 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3013억원에 불과했다.

◇전무에서 사장으로 파격 승진도

LG그룹의 인사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온정적이고 보수적이란 것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신상필벌 원칙을 엄정하게 적용했다는 게 주목된다. 그룹의 맏형 격인 LG전자는 2000년 이후 처음 부회장급 CEO를 없애고 사장급으로 하향조정했다. 반대로 올 3분기까지 14분기 연속 흑자를 내고 있는 LG디스플레이의 대표이사는 부회장급으로 승격됐다. 특히 2012년 부사장으로 승진한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은 3년 만에 두 단계나 뛰어올랐다.

LG전자는 이날 조직 개편도 단행했다. 기존 구본준 부회장과 정도현 최고재무책임자(CFO)의 공동 대표이사 체제에서 조준호 MC(모바일커뮤니케이션) 사업본부장, 조성진 H&A(생활가전) 사업본부장, 정도현 CFO 3인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바꾼 것이다.

지금부터는 각 사업본부 대표들이 ‘독립 경영’을 하기로 한 셈이다. LG전자 관계자는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판단력과 실행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올해 인사에서 부회장 2명을 포함한 사장급 이상 승진자는 10명으로 지난해(3명)보다 훨씬 많다. 권영수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사장)은 27일 인사에서 LG유플러스 부회장으로 승진 이동한다. LG 관계자는 “어려운 경영 환경을 돌파하기 위한 혁신 차원에서 최고경영진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사장급 이상 승진자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는 전무에서 사장으로 부사장직을 건너뛰고 두 단계 승진한 홍순국 LG전자 사장이다. 그는 신성장 사업인 에너지와 자동차 부품 분야의 장비 기술 개발로 수주 확대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소재·생산기술원장을 맡았다. LG전자에서 전무 제도를 도입한 2009년 이후 두 단계를 한 번에 승진한 것은 홍 사장이 처음이다.

이정애 LG생활건강 전무는 생활용품 시장 1위 자리를 확고히 한 성과를 인정받아 전무 3년차에 LG그룹 최초의 여성 부사장으로 발탁됐다. 안정 LG전자 부장과 문진희 LG생활건강 부장도 각각 상무로 승진해 LG그룹 내 여성 임원은 15명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