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을 돌아 나오면
달팽이 느린 걸음 사이로
순박한 인정이 흐드러지게 일렁인다.
그림자가 따라와 손을 내밀자
바지선에 실린 하얀 꿈들이
일제히 도라지꽃으로 날아오른다.
(정경미, 산달도 여름, '거제도 시편', 2013)

거제도엔 60여개의 섬이 있다. 산달도는 거제도 서쪽에 딸린 작은 섬이다.

11월 24일 오전, 거제 날씨는 화창했다. 푸른 바다 위로 하얀 햇살이 넘실거렸다.

거제시 신현읍 ‘거제 마이스터 고등학교’에 갔다. 학년 마다 160명씩, 480명이 공부하고 있다. 졸업생 대부분이 조선소 아니면 발전소에 취직한다. 학교는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등 53개 업체와 협약(MOU)도 맺었다. 대우조선해양에 취직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은 대우조선에서 운영하는 중공업 사관학교 과정을 거쳐 회사에 들어간다.

학교는 한적한 언덕 위에 있었다. 교정에선 고현동 시내가 한 눈에 보였다. 까치 두 마리가 한가로이 교정을 거닐었다.

진로 담당 교사를 만났다. “이름은 밝히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는 “올 해 10월 대우조선이 학생들을 뽑았어야 했는데 안 뽑았다. 대우조선만 보고 공부하던 학생들은 결국 협력 업체들에 취업했다. 내년에 한번 더 도전해보겠다고 한다”고 했다.

용접 시험중인 학생들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리자 조금 무거웠던 공기가 한순간 왁자지껄해졌다. 학생들을 만났다.

“조선소 가면 돈 많이 번다고 해서 이쪽 진로를 택했죠.”

뿔테 안경을 쓴 선체 조립과 2학년 이모(18)군이 씩 웃으며 말했다. 이군은 “조선 경기가 안 좋다고 친구들끼리 걱정 많이 해요. 어디든 취업하고 싶어요”라고 했다.

“용접 실습 때 비드(용접 작업 뒤 남는 띠 모양의 볼록한 흔적)가 예쁘게 나오면 기분이 얼마나 좋은데요.”

취업 얘기할 때 어두웠던 얼굴이 용접 얘기가 나오자 금방 밝아졌다.

같은과 윤모(18)군은 듬직한 체구에 묵직한 목소리를 가진 청년이었다. 윤군은 “중학교 선생님이 ‘넌 손재주가 있으니 조선업이 맞겠다’고 말씀 한 것이 마이스터고로 진학한 계기”라고 했다.

“큰아버지가 대우조선해양에 다니세요. 대우가 힘들어서 내년부터 사람 안 뽑을지도 모른다고 하셨어요. 진짜 안 뽑으려나 싶고… 솔직히 걱정이 많죠.”

“선생님이 용접 잘했다고 칭찬해 주실 때 제일 뿌듯해요. 열심히 하는 수 밖에 더 있나요?”. 윤군은 “조선소에 가고 싶다"고 했다.

친구들과 축구하던 전기과 김모(18)군은 기자를 보자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했다. 씩씩한 목소리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까만 눈이 반짝였다. 김군은 “빨리 취업하고 싶다”고 했다.

김군의 아버지는 대우조선해양에 다닌다.

“아버지는 절대 (조선소에) 가지 말라고 하셨어요. 힘든 거 제일 잘 아시니까. (조선소) 가면 고생할거라고 하세요. 아버지가 ‘이번에 불난 부서는 출근하지 말라고 돈도 안 줬다고, 다른 부서도 회사 못 나오는 분들이 많다’고 하셨어요. 지금 다들 어려우니까… 조선소는 가지 말라고 하시죠.”

김군은 그러나 “용접이 재밌다”고 했다. “실습 끝나고 남는 재료로 선생님 몰래 친구들과 총 모양, 칼 모양도 만든다”고 했다. 웃는 모습이 해맑았다. “조선소들이 어렵다고 하지만 너무 신경 안 쓰고 열심히 할래요.”

거제대학교 가는 길

오후 5시쯤 장승포동 거제대학교에 갔다. 장승포 앞바다에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수업이 다 끝날 무렵 도착했다. 교정은 적막했다. 바닷바람이 거셌다.

버스를 기다리는 한 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조선해양공학과 2학년 이모(21)양은 긴 머리에 뿔테 안경을 끼고 양 팔에 두꺼운 책을 잔뜩 들고 있었다.

“학교 자체가 대우 조선이 만든 학교이고, 대우조선과 협약을 맺었어요. 졸업생 70-80%는 대우조선에 갔는데, 올해는 절반 이상 줄이는 바람에 친구들이 걱정하고 있어요.”

“교수님들이 ‘대우조선이 지금은 힘들어도 쉽게 망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들 하세요. ‘대기업만 바라지 말고 중소기업 가서 몸으로 부딪히고 경력으로 가는 것도 좋겠다'고 말씀하세요. 지금은 그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하고...”

거제대학교는 1990년 대우조선이 세운 학교다. 대우조선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대우조선에 합격한 졸업생 숫자가 많이 줄었다. 지난 2월 기계공학과 졸업생 63명 중 32명이 대우조선에 합격했지만, 내년 졸업 예정자 75명 가운데 11명만 대우조선에 취업했다. 선박전기과 졸업 예정자(46명) 중에서는 2명만 합격했다.

“졸업반 선배들이 취업이 안돼 휴학을 엄청 많이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강의동 복도에서 만난 신모(20)군은 거제도 토박이라고 했다. 거제에서 나고 자라서 공부하고, 앞으로도 거제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이대로 대우조선이 망하면 거제 뿐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가 타격을 입는 것 아닐까요? 회사가 파산 할 지도 모르죠. 하지만 누구도 문제가 있다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배신감이 들어요. 누군가 미리 말했다면, 그래서 모두가 알았다면, 어떻게든 노력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신군이 갑자기 뭔가를 가리켰다. 대우조선에 합격한 10여명의 이름이 적힌 명단이었다.

“대우조선이랑 취업 협약을 맺었는데도 이 만큼 밖에 못 갔어요. 아니, 그나마 협약이라도 돼있으니 이 정도라도 간 것이라고 해야 하나?”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신군은 정말, 많이 아파했다. 화가 나 있었다.

거제대학교 교정

제모(20)군은 건물 밖 쉼터에서 만났다. 그도 거제 토박이다.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조선소에 다니는 꿈을 꿨습니다. 제가 아는 가장 안정적인 직업이 조선소 다니는 것이었거든요. 부모님도 안전만 조심하면 된다고 적극 추천하셨습니다.”

제군은 ‘한 집안의 가장(家長)’이라는 말을 몇 번 반복했다.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3000명 감원 소식을 알고 있었다.

“한 집안의 가장이 잘리고 나면 다른 일 하기도 어렵지 않겠어요? 그런데 몇 명 잘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학생들은 대우조선해양의 앞 날을 걱정했다. 한국의 조선 산업의 미래를 걱정했다.

“조선업 경기가 안 좋다는데 5조원을 지원해서라도 한 개라도 살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

“외주 업체들 월급이 반토막 났다는데, 상황이 정말 심각한 것 같다”

“국민들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거제 하늘이 어느새 어두워졌다. 파도가 바위를 세차게 때렸다. 정경미 시인의 노래처럼 바지 선에 실린 거제 젊은이들의 하얀 꿈들이 일제히 도라지꽃으로 날아오를 그 날이, 그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