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설립된 대우증권은 40여 년간 한국을 대표하는 증권사였다. 국내 첫 민간경제연구소인 대우경제연구소를 계열사로 두고 강력한 리서치 능력을 과시했다. 인재들을 뽑아 양성해 오면서 ‘증권 인재 사관학교’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현재에도 대우증권 출신들은 한국의 경제∙정치 등 각계 요직에서 활약 중이다.

아시아 외환위기로 대우그룹이 공중 분해된 후 대우증권은 2000년부터 KDB산업은행 자회사로 편입됐다. 증권업계 1위 자리를 내주고 잠시 주춤했지만 곧 대우의 명맥과 자존심을 되찾았다. 2004년 브로커리지(주식 중개) 점유율 1위와 2005년 증권사 시가총액 1위를 탈환했다. 올 들어 9월 말까지 누적 순이익이 2849억원에 달해 국내 증권사 중 최대를 기록했다.

산업은행의 민영화 실패로 대우증권은 15년만에 시장에 나오게 됐다. 다음달 21일 본입찰을 거쳐 24일쯤 우선협상대상자가 가려진다. 산업은행과 우선협상대상자가 가격협상을 거쳐 내년 1월중 인수 여부를 확정한다. 지난 2일 예비입찰에 KB금융지주∙미래에셋증권∙한국투자증권∙대우증권우리사주조합이 참여한 상태다.

높은 인수액을 써낸 후보에게 대우증권은 돌아가게 될 것이다. 현재 인수가로 2조원 안팎이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비입찰 이후 인수 후보들 간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인수 경쟁이 치열해지더라도 ‘합병 효과 극대화와 한국 금융산업 발전’이라는 기준은 지켜져야 할 것이다. 초저금리 시대에 예대마진에 의존해온 은행업의 한계는 명확하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월가의 탐욕’은 경계해야 하겠지만, 현재보다 적극적인 금융업으로의 변신이 절실하다. 산업은행이나 금융당국도 이러한 입장을 나타낸 바 있다.

은행계 증권사들은 모회사의 풍부한 자금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안정적인 영업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금융지주 울타리를 벗어난 공격적인 영업은 어려운 게 현실이다. 금융지주 우산 아래 고만고만한 수익원들 중 하나로 그치는데 만족하는 곳이 적지 않다. 덩치나 지명도에 비해 실적이 못미치는 모습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은 조금 더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고 볼 수 있다.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와 영업의지가 크기 때문이다. 이들 중 하나가 대우증권을 인수하면 자기자본 8조원에 육박하는 ‘독보적인 증권사’가 탄생하게 된다. 글로벌 투자금융(IB) 무대에서 어깨를 견줄 규모를 갖게 되는 셈이다.

물론, KB금융이 못하리란 법도 없다. 실용적이고 개혁적인 윤종규 회장은 보수적인 은행의 틀을 깰 잠재력이 있다.

누가 되든 대우증권의 ‘좋은 DNA’를 고사시키지 않고 최대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대우증권 매각이 단순한 ‘기업 떼었다 붙이기’가 아닌 한국 금융 발전의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