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규모가 커지고 과정이 복잡해지면서 프로젝트를 수행할만한 역량이 모자랐다. 중동 정세 불안 등 예상치 못한 위험도 발생했다. 저유가 장기화로 발주처 사정이 어려워지며 공기가 지연돼 원가가 상승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이 올해 3분기 1조512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나서 밝힌 실적 부진의 이유다. 2013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해외 현장이 문제가 됐다.

2009~2012년 주요 건설사 해외 수주 실적(단위: 달러)

건설업계가 해외사업장 부실로 위기를 겪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외환위기로 동남아시아 발주가 줄면서 공사 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국내 건설사의 저가 수주가 이뤄졌다. 이 여파는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가 터진 이후에도 저가 수주의 망령은 계속됐다. 유럽 건설사들이 침체한 유럽시장을 벗어나 중동 수주전에 뛰어들자, 국내 건설사들은 저가 수주에 나섰고 이는 2013년 국내 건설사들의 대규모 손실로 이어졌다.

‘중동의 저주’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건설사들은 왜 매번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까.

◆ “단기실적 집착이 과당경쟁 불러”

보통 건설사가 해외 플랜트 공사에 뛰어들기 전에는 플랜트가 들어설 대지 위치와 자재 조달 방안, 발주처가 원하는 플랜트의 출력과 그에 따른 자재비 등을 감안해 공사비용을 산출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내 건설사들은 적정 이익을 확보하기 어려울 정도로 낮은 금액을 발주처에 제시해왔다.

해외 건설사는 물론 국내 건설사와의 경쟁에서 이겨야 수년간의 일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국내 주택시장이 살아나고, 저가수주에 따른 대규모 손실이 두드러지면서 건설사들이 조심스럽게 해외 공사를 수주하고 있다. 하지만 불과 3년 전만 해도 부동산시장이 크게 침체했던 터라, 해외에서 건설사 간 경쟁은 더 치열했다.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국내 건설사의 경우 최고경영자(CEO)가 경영 능력을 인정받으려고 단기 실적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405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GS건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루와이스 석유화학단지 건설현장 모습.

문제는 공사 중 설계가 변경되거나 자재 조달이 늦어지는 악재가 터지면 건설사가 막대한 손실을 본다는 점이다.

실제로 GS건설은 2013년 1분기 535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는데, 이중 아랍에미리트(UAE) 루와이스 정유시설 공장에서 발생한 손실 4050억원을 포함해 사우디아라비아 에틸렌 비닐 아세테이트(EVA) 생산시설 공사, 캐나다 오일샌드, 쿠웨이트 아주르 송수장 등 7개 해외 사업장에서 529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이 사업장들은 대부분 GS건설이 2009년에서 2011년에 수주한 곳으로, 당시 회사 측은 “설계 단계에서 적자가 아니라 실행 단계에서 생긴 문제로 대규모 손실이 났다”고 밝혔다. 하도급 업체와 공사를 진행하며 불거진 문제와 공사 진행 과부하에 따른 공기 지연, 계약 변경으로 인한 공사비 증액을 반영하지 않은 탓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었다.

사우디 현장에서 10년 이상 근무했던 한 대형 건설회사 관계자는 “예를 들어 100개의 배관을 써야 할 플랜트 공사인데 국내 건설사들은 공사비를 낮추기 위해 80개만 쓰는 것으로 설계해 프로젝트를 수주해왔다”며 “결국 최초 설계대로 공사를 진행할 수 없어 자재를 추가하게 되면 비용이 늘어 손실이 생기는 구조”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2009년 이후 국내 건설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익성이 날지 확실치도 않은 사업을 막무가내로 수주했다”며 “2013년 건설사가 해외사업으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게 된 것도 이런 점과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 역량 부족한데 수주 폭식

수행 역량을 초과한 사업을 수주한 것이 손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형 프로젝트는 5만개 이상의 공정으로 이뤄지는데, 시공 과정에서 회사가 경험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하면 공사비가 늘어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이 2012년 수주한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CBDC 정유 프로젝트는 당시 삼성엔지니어링이 한 번도 진행한 적이 없는 정유 프로젝트 사업이었다. 사업 노하우가 부족해 생산성이 떨어지고 추가 공사까지 발생하면서 대규모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삼성엔지니어링 관계자는 “당시에 땄던 해외 프로젝트는 설계 후 실제 시공 과정에서 예상치 않은 추가 비용이 들어갔고, 또 발주처 요구로 추가 공사를 진행했다가 협상력이 부족해 공사 대금을 다 못 받는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발생했다”고 털어놨다.

해외 건설사들은 원천기술과 기본설계(FEED)와 같이 프로젝트 초기 단계부터 필요한 고부가가치 기술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 프로젝트 수행 초기부터 공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최대한 피하고 이윤 극대화를 위해 힘쓴다.

반면 국내 건설사는 자재 구매와 시공 관리, 시험 운전까지 모두 책임지는 일괄 도급방식(EPC 턴키 공사)을 주로 수주해왔다. 이 프로젝트들은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인 데다, 초기에 금액을 미리 정하고 공사를 진행하다 보니 리스크가 크다. 예기치 않은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경우 손실로 기록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류종하 한국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애널리스트는 “국내 건설사들이 저가로 수주한 해외 프로젝트의 경우 애초 견적을 제대로 못 냈던 부분도 있고, 프로젝트가 커지면서 관리를 제대로 못 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공 능력만 놓고 보면 국내 건설사들도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중국, 일본 등 해외 건설사들과 비교해 뒤지지 않는다”면서도 “EPC 턴키 방식에서는 시공만큼 구매·조달도 중요한데, 국내 건설사들이 자재를 살 수 있는 업체 수가 한정적이라 구매에서 애초 계획만큼 이윤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저가 수주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 손실 줄이는 관리 능력 부족

전문가들은 국내 건설사의 관리 능력 부족도 반복되는 해외 부실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지난 3분기 약 1500억원의 손실을 기록한 삼성물산의 사우디아라비아 쿠라야 가스복합 화력발전소 건설 현장.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 발주처는 일정·품질 관리 등 프로젝트 관리가 엄격하고, 하자가 있으면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으로 잘 알려졌다. 중동 사업 경험이 많은 삼성물산조차 쿠라야 발전소 건설 프로젝트에서 낭패를 봤다. 홍수가 발생해 공사 일정이 지연됐는데, 발주처에서 자연재해를 인정해주지 않은 것이다.

사우디 정부가 2012년부터 청년 실업률 해소를 위해 ‘사우디제이션(Saudization)’이라는 고용정책을 펴면서 인건비가 많이 오른 것도 추가 공사비 발생에 영향을 미쳤다. 삼성물산은 결국 올해 3분기 발주처와의 협의에 실패하며 이 현장에 1500억원의 원가를 추가로 부담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1500억원 정도를 손실로 잡았지만, 홍수로 인한 공기 지연과 추가 비용 문제는 아직 발주처와 협상 중”이라며 “쿠라야 프로젝트는 홍수 외에도 공사 지연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이 여럿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