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의 미래’ 저자 프랭크 로즈

"미디어 경계는 사라졌다. 모든 미디어는 하나로 이어진다."
"생산과 소비의 경계도 흐려졌다. 한 사람이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다."
"상대를 몰입하게 하는 콘텐츠가 성공한다. 웃고 울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좋은 콘텐츠다."
"수준이 높은 콘텐츠에는 값을 지불한다. 하지만 유료화 전략은 유연하게 가야 한다."
"창의적인 일에는 엄격하고 경직된 체제를 피해라. 너무 서두르지 마라."

매일매일 새로운 뉴스와 책, 쇼, 게임, 영화, 광고가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의 시대.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디어·콘텐츠산업 전문 저널리스트인 프랭크 로즈(Frank Rose)는 “몰입하게 만드는 콘텐츠가 성공하고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몰입을 맛본 소비자(관객, 독자, 청자)는 비단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나아가 자발적으로 모여 그 콘텐츠를 분석하고 관련 제품에도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그런 팬층이 단단한 콘텐츠일수록 수명도 길고, 다른 장르로 변주될 가능성도 크다. 판타지소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 드라마 ‘로스트’나 ‘오피스’의 성공과 인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그처럼 몰입을 끌어내는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로즈는 자신의 책 ‘콘텐츠의 미래’에서 그 비결을 10가지로 제시했다.

①대중이 원하는 세계를 보여주어야 한다.
②2차 창작물로도 발전시킬 수 있는 깊이 있는 세계관을 담아야 한다.
③현실과 혼동할 만큼 정교한 허구여야 한다.
④이야기가 완전히 종결되기보다 모호함을 남기는 것이 좋다.
⑤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부과하는 열린 세상을 제시해야 한다.
⑥팬들의 견해와 감상이 반영되는 쌍방향성을 갖춰야 한다.
⑦콘텐츠 소비자도 콘텐츠의 일부를 재구성할 수 있게 해야 한다.
⑧소비자의 반응을 치밀하게 예상하고 파악해야 한다.
⑨다양한 플랫폼을 다 활용해야 한다.
⑩무엇보다 감성을 자극해야 한다.

추가로 그에게 이메일로 보충 질문을 해서 답을 받았다.

-당신이 말하는 ‘콘텐츠’는 어디까지 포괄하는 것인가?

이전까지만 해도 미디어가 (문화생활의) 중심이었다. 예를 들어 방송은 텔레비전, 영화는 영화관, 잡지 기사는 잡지 같은 식으로 그 내용을 전달하는 매체에 종속됐다. 하지만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모든 미디어가 하나로 이어진다. 미디어간 경계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콘텐츠’라는 단어는 미디어가 더이상 특정한 개별적인 형태로 분리되지 않은 시대에, 미디어가 전달하는 모든 내용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다.

-좋은 콘텐츠란 어떤 것인가?

독자나 시청자에게 ‘감성적인 영향’을 주는 게 좋은 콘텐츠다. 해당 콘텐츠를 봄으로써 독자들이 웃거나 울고,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에 대해 곰곰히 숙고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는 소설이나 영화 같은 ‘서사물’로 한정되지 않는다.

특정한 규칙이나 목표가 있는 게임 같은 창작물도 콘텐츠로 분류할 수 있다. 물론 ‘좋은’ 콘텐츠가 되기 위해선 게임도 그 속에 궁극적인 목표가 있어야 한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를 담아야 한다.

-당신은 ‘콘텐츠의 미래’에서 독자들이 콘텐츠에 단순히 참여(engagement)하는 것보다 몰입(immersion)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떻게 다른가?

몰입은 자신도 모르게, 의도치 않게 일어난다. 참여보다 덜 자발적(involuntary)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 마디로 독자나 청자가 어떤 이야기에 푹 빠지는 일이다. 반면, 참여는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게임을 하거나 지금 시청 중인 텔레비전 쇼에 대해 소셜미디어에 글을 남기는 등의 활동이 참여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야기 속에서 살고 싶어 하고, 이야기 속 인물들에 자신을 투영하고 싶어한다고 본다. 이런 생각은 수동적이고 대개 상상 속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이런 욕구가 상상에 그치지 않고 어떤 행동으로 일어날 때, 몰입과 참여가 동시에 이뤄진다.

-디지털 시대의 프로슈머(prosumer)를 강조했다. 어떤 사람인가?

산업화 시대에는 분야별 경계가 확실했다. 생산자는 생산자, 소비자는 소비자였다. 하지만 디지털화는 이런 경계를 무너뜨린다. 개개인이 특정한 역할만 맡는 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여러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아바타(2009)’의 팬들이 만든 백과사전 웹사이트 ‘아바타 위키’의 첫 화면

-현재 콘텐츠 산업이 직면한 환경을 어떻게 보나?

기술과 사회, 산업간 관계를 설명하는 열쇳말은 ‘경계(boundary)’와 ‘모호함(blur)’이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시대엔 작가(콘텐츠 생산자)과 독자(콘텐츠 소비자)의 경계도 모호해진다. 게임, 소설, 오락, 광고 등 콘텐츠 형태의 구분이 희미해지고, 현실과 허구간 경계도 희미해진다. 디지털 시대는 독자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와 본인의 경계를 무너뜨리도록 촉진한다.

영화를 예로 들어보겠다. 그동안 영화관의 ‘화면(screen)’은 다른 세계로 통하는 창이었다. 하지만 제임스 캐머런이나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영화감독들은 이제 화면을 장애물로 취급한다. 화면이 관객과 관객이 소비하려는 콘텐츠를 분리하는 장벽이라고 생각한다.

2년 전 미 서던캘리포니아대 강연에서 조지 루카스 감독과 스필버그 감독은 지금 같은 형태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몰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루카스 감독은 대형 자본을 들인 영화는 브로드웨이 공연이나 대형 스포츠 경기처럼 비싼 값에 표를 판매하고, 나머지 영화들은 온라인서비스로 이동할 것이라고 봤다.

스필버그 감독은 한발 더 나가 동영상과 영화, 컴퓨터가 하나로 연결된 유비쿼터스 화면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금처럼 한 쪽에 걸린 화면 하나로 영화를 감상하기보다, 3D 형태로 내용을 ‘체험’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기술의 발달로 이런 형태의 영화 감상이 가능해진다면, 관객은 지금보다 더 콘텐츠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최근 콘텐츠 산업계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혁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최근 수십년 동안 가장 인상적인 혁신은 단언컨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다. 디지털로 만든 가상의 이미지와 현실의 경계를 지운 기술이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지만, 가상현실은 단순한 눈속임 기술 이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하지만 가상현실 기술이 제대로 구현되려면 앞으로 몇 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본다.

-빅데이터(big data)나 인공지능 같은 신기술이 콘텐츠 산업에 미칠 영향은?

데이터는 점점 더 많아지고, 더 구체적이게 됐다. 언론이 특히 수많은 데이터(자료)에 의존한다. 하지만 데이터에만 의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인간은 본래 다양성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데이터만 활용해서는 내용이 단조롭거나 비슷비슷해지기 쉽다.

-로봇이 사용 범위를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콘텐츠 영역에서는 어떤 역할은 어떨까?

로봇과 인공지능은 몇 가지 형태로 콘텐츠 생산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로봇이나 인공지능의 역할은 대부분 통계적인 업무로 한정될 것이다. 예를 들어 스포츠 경기나 기업 활동 분석 같은 것을 말한다. 관객이나 독자가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는 감성적인 콘텐츠를 만들려면 아직 멀었다고 본다.

-콘텐츠 산업 중에서도 앞으로 유망한 분야와 취약한 분야는 어떤 것을 꼽을 수 있나?

아직까지 독자들은 수준 높은 콘텐츠라면 온라인상에서도 그에 대한 값을 지불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형태의 뉴스 제공업체, 즉 산업화 시대에 최적화된 신문, 잡지, 방송사 등은 (디지털화에) 취약하다. 뉴욕타임스(NYT) 같은 몇몇 언론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출판업체들이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기 어려워 한다.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뉴스 제공업체로 떠오르는 중이다.

-앞으로 점점 더 많은 개인이 콘텐츠 생산자로 등장하는 1인 출판 시대가 될 거라고들 한다. 어떻게 보나?

이전에는 개인이 콘텐츠 창작자로 활동할 기회가 적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잠재적인 창작자다. 문제는 충분한 독자를 확보할 수 있는가, 콘텐츠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가, 두 가지다. 모든 창작자들이 이 두 가지를 모두 해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콘텐츠 산업에서 최근 주목하는 스타트업으로는?

개인적으로 비디오게임에 대한 글과 창작물을 취급하는 ‘킬 스크린(Kill Screen)’의 팬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로 일한 제이민 워런이 설립한 업체다.

-미디어들도 다들 유료화 모델을 찾기 위해 고심한다. 조언한다면?

독특하고 아주 흥미로운 콘텐츠를 생산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는 엄격한 유료화 시스템은 피해야 한다고 본다. 디지털 시대에 잘 적응한 사례로 꼽은 NYT의 경우, 구글 같은 검색엔진을 통해 기사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더 깊이 있는 기사를 읽거나 추가로 기사를 찾아보기 위해선 돈을 내야 한다.

-콘텐츠 생산 기업이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은?

기업 운영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창의적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을 관리하는 일은 더 어렵다. 하지만 지나치게 엄격하고 경직된 체제를 피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언제 이야기가 완성될지, 언제 제작을 시작할지 같은 일정을 너무 서두르지 말라는 뜻이다.

픽사와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수장인 에드윈 캣멀 회장이 쓴 책 ‘창의성 주식회사(Creativity Inc.)’를 추천한다. 캣멀 회장 스스로가 콘텐츠 기업을 이끌면서 훌륭한 성과를 냈고, 저서에도 그의 통찰력이 담겨 있다.

◆프랭크 로즈

IT 전문매체 와이어드의 객원편집자., 뉴욕타임스(NYT)와 LA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영화·광고·IT 분야와 미디어·콘텐츠산업에 대한 글을 기고한다. 스탠퍼드대, 뉴욕대, 콜롬비아대 등에서 콘텐츠 산업과 언론에 대해 강의한다. 애플을 창업한 고(故) 스티브 잡스가 회사에서 쫓겨난 배경을 다룬 책 ‘에덴의 서쪽(West of Eden)’과 헐리우드에서 일하는 영화인들의 관계사를 담은 ‘에이전시(The agency)’ 등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