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해민

지난 22일과 23일(한국 시각)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의 서킷 오브 더 아메리카에선 인디 라이츠의 공식 테스트가 펼쳐졌다. 포뮬러 카 수십대가 굉음을 내며 달리는 가운데 '최'라는 한글과 태극문양이 새겨진 헬멧을 쓴 한 드라이버가 눈에 띄었다. 유일한 한국인 출전자였던 최해민(31)이었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인디 500 출전에 도전하는 선수다.

인디 라이츠는 인디카 시리즈의 하위 리그이다. 미 프로야구(MLB)에 비유하면 마이너리그 트리플A(인디 라이츠)와 메이저리그(인디카 시리즈)의 관계다. 인디카라는 명칭은 가장 오래된 대회인 인디 500(1911년 미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시작)에서 유래했다.

최해민이 도전장을 던진 인디카 시리즈는 '미국판 F1(포뮬러 원)'이다. 유럽 중심의 F1과 똑같이 조종석이 개방돼 있고 바퀴가 겉으로 노출된 '오픈 휠(open wheel)' 레이스 전용차를 쓴다. 인디카 시리즈는 스톡카(일반 차를 경주용 차로 개조한 것)를 사용하는 나스카와 함께 미국 모터스포츠의 양대 축으로 불린다.

인디카 시리즈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위험한 자동차 경주대회'다. 계란처럼 생긴 타원형 경기장인 오벌 코스(oval course) 덕분이다. 내년 시즌을 기준으로 16경기 중 5경기가 오벌 코스에서 열린다. 영암 서킷처럼 구불구불한 로드 코스에서 모든 경기를 치르는 F1과 다르다.

1911년 시작돼 세계 최고(最古) 역사를 자랑하는 자동차 경주 대회‘인디500’은 매년 40만 관중이 몰려오는 빅 이벤트다. 사진은 지난 5월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제99회 인디500의 경기 장면.

포뮬러 카 수십대가 단순한 오벌 코스 경기장에서 1위를 놓고 경쟁하기 때문에 최고 속도가 시속 370㎞에 달한다. 사실상 직선에 가까운 오벌 코스를 달리는 인디 500에서는 우승자의 평균 속도가 시속 300㎞를 넘은 적도 있다. F1은 커브가 많기 때문에 평균 속도 200㎞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빠른 만큼 위험하다. 실제 지난 20년간 F1에서는 사망 사고가 단 1건이었던 것에 비해 같은 기간 인디카 시리즈에서는 드라이버 8명이 숨졌다. 8명 중 6명의 사망이 오벌 코스에서 나왔다. 인디카 대회에서 통산 3승을 거둔 저스틴 윌슨(영국)이 지난 8월 오벌 코스였던 펜실베이니아 대회에서 레이스 도중 앞쪽 차량 충돌로 인한 파편에 맞아 사망하자 '오벌 코스 폐지론'도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인디카 시리즈는 인디500 등 오벌 코스 개최를 고수하고 있다.

2015 시즌 여성 드라이버가 전무했던 F1과 달리 인디카 시리즈에서는 여자 선수 두 명이 남자들과 자웅을 겨뤘다. 과거 여성 드라이버 대니카 패트릭(미국)은 2008년 인디카 시리즈 일본 대회에서 1위를 하며 여성 드라이버로는 최초로 미국의 주요 자동차 경주대회를 정복했다. 철저하게 상업성을 중시하는 인디카 시리즈에선 화제성이 높은 여성 드라이버의 출전을 장려하는 분위기다.

인디카 시리즈는 경쟁 조건이 비교적 동등하다. F1에서는 출전 팀이 자체적으로 섀시와 엔진을 제작하는데 여기서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반면 인디카는 정해진 섀시와 엔진을 써야 한다. 승리를 위해 드라이버 개개인의 기량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테스트를 마친 최해민은 "아직 적응 단계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내년 인디 라이츠를 거쳐 그다음 해엔 꼭 인디카 시리즈 무대를 밟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