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의 경영 스타일은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과 많이 다르다.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던 이건희 회장과는 달리 이재용 부회장은 전면에 나서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글로벌 경영자들과 직접 사업 담판을 짓고, 수익성이 나쁜 계열사를 과감하게 정리한 것이 대표적이다. 12월초 삼성그룹의 사장단 인사에서도 이재용 부회장의 이런 스타일이 반영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건희 회장의 손발 역할을 했던 비서실 고위직 관계자와 현재 삼성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고위 관계자를 통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들어봤다.

① '인사 내가 직접'

이번 삼성 사장단 인사는 이재용 부회장의 의중이 본격적으로 반영되는 인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건희 회장의 병환으로 지난해 삼성 사장단 인사는 안정에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올해는 삼성그룹의 재편 분위기와 맞물려 큰 폭의 인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삼성에 정통한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은 보고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직접 인사를 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인사 스타일은 주요 계열사 몇 곳을 제외하고 비서실이 올린 인사안을 수용했던 이건희 회장과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비서실에서 이건희 회장을 5년여간 수행했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은 비서실을 통해 1안과 2안을 보고받아 인사를 냈다"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서실의 뜻을 많이 반영했다"고 말했다.

② 실용주의 노선

이건희 회장은 해외 출장길에 오르면 늘 주재원들의 의전을 받았고 수행원이 뒤따랐다.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한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이 평소 '권력은 거리(距離)'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며 "이 때문인지 승진하려면 이 회장과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고 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과 함께 해외 출장길에 올라도 홀로 움직였다.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주재원들이 가이드를 자청해도 영어에 능통해서인지 마다하고 홀로 다녔다"고 말했다. 이런 성향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재계에선 이 부회장의 스타일을 실용주의로 연결한다.

이 부회장은 지난 9월 회사 소유의 전용기 3대를 대한항공에 매각하기로 했다. 해외 출장을 갈 때 민항기를 이용해도 충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삼성전자 협력업체 대표이사는 "일본 출장을 가는데 비즈니스석에서 이 부회장을 마주쳐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며 "수행원도 따로 없이 혼자 출장을 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DMC(디지털 미디어 통신·Digital media communication)연구소 관계자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DMC 임원들의 사업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연구소를 유지하면 나한테 또는 회사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질문했다. 회사의 실익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지 않느냐는 얘기였다는 게 중론이다. 보고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DMC 소속 1000여명은 현장에 배치했다. 미래 기술을 연구하는 종합기술원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실제 사업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원만 남기는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여론에 상당히 민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화'나 '사치'스럽다는 재벌에 대한 대외 이미지를 경계한다고 한다. 이 부회장은 서울 서초사옥 지하에 있는 요금 2만원대 미용실을 즐겨찾는다. .

③ 재벌 총수보다는 전자기업 CEO

이 부회장은 최근 그룹 수뇌부들에게 저성장 시대에 대비한 변화를 요구했다. 삼성그룹이 실적이 나쁜 방산과 화학 부문을 빠르게 매각하고, 전자와 금융 계열사에 힘을 집중한 것은 이에 대한 호응이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뼈를 깎는 수준의 변신이 필요한 위기라는 공감대가 내부에서 퍼지고 있다"며 "미래 성장보다는 '생존'을 키워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 또다른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세계 1위가 되기 어려운 사업은 억지로 끌고 가는 것보다는 과감하게 정리하고 1위가 될 수 있는 사업에 역량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은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최우선 가치로 모든 계열사를 1위로 이끌도록 독려했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작업을 서두르는 동시에 수익성이 나쁜 계열사에 대한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문어발처럼 많은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 총수가 되기보다는 스티브 잡스와 같은 전자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되길 원한다"며 “이런 뜻을 수뇌부에 누차 밝혀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