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B(아시아개발은행) 부총재와 관련해선 아예 알려고 들지 말라는 상부의 엄명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궁금하지만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볼 방도가 없네요."

요즘 세종시 기획재정부 청사엔 조만간 필리핀 마닐라 본부에서 인선 작업이 이뤄질 ADB 부총재 건에 대해 함구령이 내려졌다. 기재부 최희남 국제경제관리관이 한국 측 후보로 내정돼 ADB 본부에서 면접을 보고 왔다는 사실이 관가에선 공공연한 비밀인데도 기재부는 공식 확인조차 해주지 않고 있다. 기재부가 입 다물고 있는 이유에 대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ADB 부총재직을 우리가 가져올 가능성이 희박해, 소문나 봐야 좋을 게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불과 한두 달 전만 해도 "이번엔 우리나라가 부총재를 맡을 차례"라고 자신감을 보였는데 기류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우리 정부는 내년 1월로 3년 임기가 끝나는 호주 출신의 브루스 데이비스 부총재의 후임 자리를 따내려고 물밑 작업을 벌여왔다. 다른 회원국을 상대로 "한국이 중국·일본에 이어 역내 3위 경제 대국인데도 2003년 이후 12년 넘게 부총재를 배출하지 못했다"는 점을 부각해 설득했다. 호주 몫의 부총재 자리를 역내(域內) 선진국에 속하는 한국과 호주가 번갈아 맡자는 논리도 펼쳤다. 그 결과 상당한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수성(守城)에 나선 호주가 '비장의 카드'를 내놓으면서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호주가 여성 후보를 히든카드로 내민 것이다. 국제기구 사정에 밝은 한 전직 관료는 "국제기구는 양성 평등(gender equality)을 중시하는데 현재 ADB 총재와 부총재 6명 가운데 여성이 한 명도 없다"면서 "호주가 아니라 다른 나라가 여성 후보를 내도 무난히 당선될 분위기"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지분율 5.1%(작년 말 기준)로 아시아 국가 가운데 일본·중국·인도·호주·인도네시아에 이어 ADB의 여섯째 주주다. 현재 ADB 총재는 지분율 1위인 일본이 맡고 있고, 아시아 몫의 부총재 4명은 중국·인도·호주·인도네시아 출신이다. 냉정하게 지분율 순으로 부총재직을 나눠 갖는 구조다. 이 때문에 기재부 안팎에선 "우리나라가 국력에 비해 국제기구에 기여하는 데는 인색했던 결과가 실패를 낳았다"는 자성론이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