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필리핀 수비크 경제자유구역(SBMA·지도)에 있는 한진중공업 수비크 조선소 '6독(dock·배를 만드는 작업장)'. 축구장 7개 넓이(길이 550m, 폭 135m)로 세계 최대 규모인 이곳에서는 1만1000TEU(1TEU는 6m 길이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1척, 9000TEU급 3척, LPG(액화석유가스) 수송선 1척이 동시에 건조되고 있었다. 필리핀 현지인 근로자들은 가만히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는 뜨거운 햇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용접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진중공업이 2009년 필리핀 수비크에 완공한 수비크 조선소 전경. 이 조선소는 한·중·일 이외 지역에 있는 조선소 중에서는 수주량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중 1만1000TEU급 컨테이너선은 수비크 조선소가 2007년 6월 1호선 건조를 시작한 이래 100번째로 만들고 있는 선박이다. 한진중공업은 이달 9일 이 배의 건조를 시작했고 내년 6월 선주(船主)에 배를 인도한다. 아직은 형태가 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공사를 마치면 길이 330m, 폭 48.2m, 높이 27.2m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으로 탈바꿈한다.

韓中日 3국 제외하면 세계 1위 조선소

이달 초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 회사인 클락슨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수비크 조선소는 수주 잔량이 146만3000CGT(표준 환산 톤수)로 세계 15위를 기록했다. 한·중·일 3국 이외 국가에 있는 조선소 중에서는 세계 1위다.

수비크 조선소는 조선소 건설 공사를 시작하기도 전인 2006년 2월부터 지금까지 모두 117척을 수주했고, 95척을 선주에 인도했다. 지금까지 수비크 조선소 누적 매출은 52억달러(약 6조250억원)다. 2009년 이후 세계 경기 불황으로 조선·해운업이 불황 터널을 지나는 것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다만 정철상 상무는 "작년 4월엔 수주 잔량에서 세계 10위까지 치고 올라갔지만, 3년치 일감을 확보한 것을 감안해 지나친 저가 수주를 피하면서 순위는 다소 내려갔다"고 말했다.

기술력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 3위 컨테이너 선사인 프랑스의 CMA-CGM은 작년 2만6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3척을 수비크 조선소에 주문했다. 전 세계에서 2만TEU급 컨테이너선을 만들 수 있는 조선소는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과 일본의 이마바리조선에 불과했지만, 수비크 조선소도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전우윤 전무는 조선업 불황 속에서도 안정적인 성과를 낸 이유에 대해 "최신 시설과 우수한 노동력이 결합해 상승효과를 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지 생산직 근로자의 생산성은 아직 한국 근로자의 50~60%에 머물고 있지만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이들의 임금은 평균 월 30만원 정도로 중국 근로자의 3분의 1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8년여 동안 移職한 직원 거의 없어"

한진중공업이 수비크 조선소에서 건조하고 있는 1만1000TEU급 컨테이너선. 이 배는 수비크 조선소에서 만드는 100번째 선박이다.

조선소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한진중공업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북서쪽으로 110㎞쯤 떨어진 수비크는 과거엔 미군 해군기지로 통하던 곳이지만, 이젠 한진중공업 구역으로 불리고 있다. 조선소 인근 30만㎡에 직원들을 위한 주택 1000여 가구를 마련한 '한진 빌리지'는 수비크 경제자유구역에서 외국인 투자 기업과 정부, 민간 사업자가 협력한 대표적 사업으로 꼽히고 있다. 용접, 도장, 설계 등 분야의 현지 우수 인력을 양성하는 '기술훈련원'도 인기다.

2007년 건립 후 지금까지 배운 4만5000명이 수비크 조선소는 물론 필리핀 제조업체 곳곳으로 퍼져 나가 있다. 우수한 복지와 교육 여건 덕에 수비크 조선소 전체 직원 3만1000명 가운데 이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정섭 수비크 조선소 사장은 "철저히 현지화함으로써 조선소의 안정적 운영이 가능해졌다"며 "다른 조선사들이 골치를 앓고 있는 해양 플랜트 수주도 하지 않은 등 호재가 많아 향후 실적도 상당히 긍정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