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전후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에서 공격적으로 공사를 수주한 건설업체들이 잇따라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당시 건설업체들이 저가로 수주한 사업 중 일부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아 잠재 부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저가 해외 사업 수주의 원인과 실태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2013년 3월 28일 삼성물산(028260)은 호주의 로이힐(Roy Hill) 홀딩스가 발주한 로이힐 철광석 광산 프로젝트의 기반시설 건설공사를 56억 호주달러(당시 환율로 약 6조5000억원)에 수주했다. 로이힐 사업은 포스코건설·STX 컨소시엄이 63억 호주달러(약 7조3100억원)에 수주하기 위해 2년 넘게 공을 들였으나, 사업권은 막판에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한 삼성물산으로 넘어갔다.

사업을 뺏긴 포스코건설과 STX는 격분했다. 정동화 당시 포스코건설 부회장은 “(삼성물산이 사업을 수주하기) 불과 몇 개월 전에 하청으로 들어오겠다며 협의하고 있었는데 삼성이 우리를 제치고 발주처와 계약했다.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STX는 청와대 등에 탄원서까지 제출해 “삼성물산은 오직 자사 이익만을 최우선으로 해 포스코·STX 컨소시엄의 수주를 교란·방해하는 등 상도의를 저버리고 막대한 국부 유출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삼성물산은 로이힐 사업을 적정 가격에 수주했다고 맞섰다. 하지만 업계는 삼성물산이 로이힐 사업을 저가로 수주한 탓에 이 사업에서만 1조원대 손실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 내부에서도 로이힐 사업에서 1조원 안팎의 손실을 볼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 외에 삼성엔지니어링과 대림산업, GS건설(006360)등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중동 시장에서 치열하게 수주 전쟁을 벌였던 건설업체들은 2012년부터 조(兆) 단위의 적자를 털어냈다. 그러나 아직 남은 공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과 공사비로 쓰고도 받을 가능성이 적은 미청구 공사금액까지 합하면 잠재 부실 규모는 최대 12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물산이 호주에서 시공 중인 로이힐 사업장 전경.

◆ 저가 수주 경쟁에 공사 금액 20% 넘게 손실

삼성엔지니어링, GS건설, 대림산업, SK건설 등 해외에서 무리하게 사업을 벌인 건설업체들은 일부 문제 사업장의 경우 공사 금액의 약 20%를 손실로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 사업장은 처음 계약한 공사 금액보다 비용이 추가 발생해 원가가 늘어난 사업장을 말한다. 건설업체가 늘어난 원가만큼 발주처로부터 공사비를 더 받으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시공사 잘못으로 원가가 늘어나면 손실로 처리해야 한다.

대림산업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진행 중인 ‘쇼아이바(Shoaiba) 2 발전’, ‘사다라(SADARA) MFC’, ‘사다라 Isocyanates’, ‘라빅(Rabigh) 2 CP1·CP2’ 등 5개 사업과 쿠웨이트에서 진행 중인 ‘LPG TRAIN 4’, ‘KNPC SHFP’ 등 2개 사업에 지금까지 총 1조~1조5000원의 충당금을 쌓았다. 이 중 8000억원은 손실로 확정됐다. 7개 사업장의 올해 6월 말 기준 완성 공사액은 5조8470억원. 완성 공사액의 21%를 충당금(1조2500억원으로 가정)으로 쌓은 것이다.

2013년과 올해 3분기에 각각 1조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삼성엔지니어링은 미국 다우(Dow) 석유화학 프로젝트, 사우디아라비아 샤이바(Shaybah) 가스 프로젝트, 아랍에미리트 타크리어(Takreer) CBDC 정유 프로젝트 등 7개 사업장에서만 최소 1조6400억원의 손실을 냈다. 9월 말 기준 이들 프로젝트의 전체 공사액은 8조4990억원으로, 지금까지 확인된 손실은 전체 공사금액의 약 19%에 달한다.

GS건설도 사우디아라비아의 PP-12 복합화력발전소 건설공사, 라빅 UO1, 라빅 CP 3&4 사업장에서 3200억원의 손실을 봤다. 손실 금액은 전체 공사액(2조4100억원)의 13% 수준이다.

건설사들이 해외 사업에서 대규모 적자를 본 이유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서 공사 비용이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경기가 꺾여 국내 일거리가 줄어들자 대형 건설사들이 일제히 해외로 눈을 돌리면서 수주 경쟁이 치열했다”며 “당장 급한 대로 매출을 늘리기 위해 이익을 최소화하면서까지 수주를 했는데, 예상치 못한 비용이 늘어나니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적자 털어냈지만…진행 중인 공사 부실만 2조원대

삼성엔지니어링과 GS건설, 대림산업, 삼성물산, 대우건설(047040)등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사우디아라비아와 UAE에서 수주한 문제 사업장 중 일부는 여전히 공사가 진행 중이다. 대신증권(003540)에 따르면 6월 말 기준으로 공사가 진행 중인 문제 사업장은 삼성엔지니어링, 대림산업, GS건설이 각각 7개씩이고 대우건설이 6개다. 삼성물산은 호주 로이힐 프로젝트가 문제 사업장으로 꼽힌다.

건설사들이 문제 사업장에서 앞으로 얼마의 손실을 기록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과거의 충당금 설정 비율과 수주 잔액을 고려하면 삼성엔지니어링은 약 8100억원, 대림산업은 약 1830억원, GS건설은 약 500억원의 충당금을 적립할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물산은 호주 로이힐 프로젝트에서 1조~1조5000억원의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이를 다 합하면 2조430억~2조5430억원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은 3조2480억원에 달하는 ‘타크리어(Takreer) RRE Utilities & Offsite’ 사업에 지금까지 충당금을 한 푼도 적립하지 않았다. 이 사업은 공사 기간에 원가가 추가로 발생해 손실이 예상된다. 또 타크리어 CBDC 사업과 샤이바 가스 프로젝트 사업은 수주 잔액이 합쳐서 약 9270억원이다. 이들 3개 사업의 공사 금액에 충당금을 19%(문제 사업장의 완성 공사금액 대비 충당금 비율) 적립한다고 가정하면 약 8100억원이다.

대림산업은 7개 사업장에서 8560억원의 수주 잔액이 남았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라빅 사업과 쿠웨이트의 ‘KNPC SHFP’ 사업은 공사 진행률이 각각 81%, 30%에 불과해 향후 손실이 얼마가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선일 대신증권 연구원은 “공사 진행률이 80%쯤 돼야 사업의 윤곽이 잡혀서 손실 규모도 추정할 수 있다”며 “초기 사업장은 이익이나 손실 규모를 예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5개 건설사, 떼일 위험 큰 미청구 공사금액 10조원

건설업체들이 투입한 공사비를 받지 못한 미청구 공사금액도 잠재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청구 공사금액은 발주처로부터 받을 수 있는 돈이어서 업체들은 이익으로 반영하지만, 끝까지 받지 못하면 손실로 처리해야 한다. 삼성물산, 삼성엔지니어링, GS건설, 대우건설, 대림산업 등 5개 주요 업체의 9월 말 기준 미청구 공사금액은 10조1091억원에 달한다.

국내 사업의 미청구 공사금액은 받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지만 해외 사업은 돌려받지 못해 손실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미청구 공사금액을 한꺼번에 손실로 반영하면 흑자를 기록하던 회사가 갑자기 적자를 낼 수 있다.

미청구 공사금액이 앞으로 얼마만큼의 손실로 이어질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해외 사업의 매출 비중이 클수록 미청구 공사금액이 손실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엔지니어링은 3분기에 1조476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는데, 미청구 공사금액은 2분기 말 2조3163억원에서 3분기 말 1조6779억원으로 6384억원 줄었다. 한국신용평가는 줄어든 미청구 공사금액이 대부분 손실로 전이된 것으로 추정했다. 5개 업체가 미청구 공사금액 10조원 중 30~40%만 받지 못해도 손실이 3조~4조원이 된다.

전문가들은 미청구 공사금액이 갑자기 늘어나면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5개 업체 중에서 3분기에 미청구 공사금액이 많이 늘어난 곳은 GS건설과 삼성물산이다. GS건설의 미청구 공사금액은 2분기 말 2조7310억원에서 3분기 말 3조1739억원으로 4429억원 증가했고, 삼성물산의 미청구 공사금액은 제일모직과의 합병 영향으로 같은 기간에 2조364억원에서 2조3533억원으로 늘었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매출액 대비 미청구공사 비율이 일정 범위 내에서 움직인다면 대규모 어닝 쇼크(큰 폭의 실적하락)가 생길 가능성은 작아진다”며 “미청구 공사채권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은 공사 완성도에 대해 수주업체와 발주처 간 이견이 생겼다는 의미라 관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