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8일 대우조선해양이 기분 좋은 뉴스를 발표했다. “그리스 안젤리쿠시스 그룹 마란 탱커스에서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2척을 수주했다.”

11월 19일엔 영국 조선·해운 분석 기관인 클락슨이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의 수주 잔량이 131척(10월말 기준), 843만 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로 세계 조선소 가운데 1위라고 발표했다.

2위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528만 CGT, 111척), 3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507만 CGT, 91척)를 한참 따돌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우조선해양 정성립 사장은 요즘 세계 곳곳의 선주사들을 찾아 다니느라 바쁘다. 5조원의 부실을 갚기 위해서는 더 많은 배를 수주하고, 더 많은 배를 납품해 돈을 벌어 갚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 사장은 세계 조선업계가 알아 주는 ‘영업맨’이다.

거제 겨울은 더 깊어지고 있다. 지난 주 내내 비가 오락가락 하더니 기온이 부쩍 내려갔다. 바람마저 거세 더 춥게 느껴진다. 거리의 시민들은 두터운 외투로 갈아 입었다.

대우조선해양의 빛나는 수주 실적에 대해 대우조선해양 직원의 생각은 어떨까?

지난 주 어느 날, 밤 8시쯤 대우조선해양 직원과 만났다. 어둠이 짙게 깔린 시각이었다. 사방이 깜깜한 공터에 차를 세우고 헤드라이트를 껐다. 잠시 기다리자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차를 타고 제3의 장소로 이동했다. 5분쯤 지났을까? 한 카페 귀퉁이에 마주 앉았다.

대우조선해양 직영 직원이 남긴 메모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회사가 제대로 되길 바랍니다. 조선비즈가 쓴 대우조선해양 기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봤습니다. 틀린 말 하나 없습니다.”

◆“영국 군함 인도 두 달 미뤄져…지체보상금 하루 3500만원 물고도 기약 없어”

그는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줬다. 간간히 긴 한숨도 내쉬었다.

“대우조선해양은 아직 멀었습니다. 회사는 내년부터 좋아질 것이라고 하지만 내부에서 일하는, 뭘 좀 아는 사람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영국 조선소에서 그 가격에는 만들 수 없다고 다 거절한 영국 군함 4척을 우리가 하겠다며 수주했습니다. 말도 안되는 저가 수주였습니다.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12월로 예정된 인도일 못 맞추고 내년 2월로 미뤘습니다. 하루 2만 파운드(한화 3500만원)씩 꼬박꼬박 물어 내야 합니다. 지체보상금 그렇게 내고 어느 조선소가 견디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군함 1호선 공사예요. 나머지 3척은 어떻게 할지….1호선 공사는 아직 진행 중이고, 내부에선 내년 2월 인도도 어렵다는 것을 다 압니다.”

◆외국 엔지니어 “잇단 사고로 납기 못 맞춰, 사고 계속 나면 외국 선사 일 안줄 수도"

대우조선해양의 희망적인 소식이 날아든 11월 19일 밤에 만난 외국인 엔지니어 얘기가 생각났다. 그는 “대우조선해양 현장에 가보면 다들 스마트폰 하기 바쁘다. 작업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내년에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이 나아질 것 같냐고? ‘NO’.” 단호한 손짓으로 ‘ X 자’를 긋는 그의 큰 동작에 가슴이 철렁했다.

11월 18일 밤에 만난 유럽 엔지니어도 비슷한 말을 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일부러 저가 수주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러가지 복잡한 상황이 있다. 주문자들이 무리하게 설계 변경을 요구하는 상황도 많다. 대우조선해양이 열심히 하는데...상황이 어려운 걸 다 아니까 억울하게 당하는 측면도 있다.”

그는 “Safety(안전)가 베리베리베리베리(very·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네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최근 화재 사고 등으로 사망한 근로자가 네 명이나 된다는 뜻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이 납기일을 못 맞추는 이유는 사고가 많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안전을 생각하는 문화가 없다. 최근 화재로 네 명이나 죽었다. 끔찍한 일이다. 안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공정이 늦어진다.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한데, 이런 사고가 반복되면 외국선주들이 대우조선해양에 더 이상 일을 맡기지 않을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전경

전에 만난 협력업체 대표도 저가 수주 문제를 거론했다.

“대우조선해양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저가 수주다. 저가로 수주하면 돈이 부족할 수밖에 없으니 협력업체를 쥐어 짜 돈을 아낀다. 턱도 없는 가격에 수주를 하니 공사 기간이 12개월이면 6개월 만에 돈을 다 쓴다. 그러면 대우조선해양이 가지고 있는 사업비를 써야 하는데, 협력업체들의 성과율을 마음대로 깎아서 기성(하청업체들에 주는 자금)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직원들 일을 시키나?”

◆“책임져야 할 임원들이 남아서 직원들 닦달”

대우조선해양 직원은 그림까지 그려가며 내부 사정을 설명했다. 그는 “경영진과 임원진의 무책임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회사가 이번에 임원 30% 감축했다고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임원 중에 나간 사람은 없어요. 이번 사태에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모두 회사에 남아 있고,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들만 나가고 있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은 올 해 8월 이후 임원 30%를 감축했다고 했다. 대우조선해양 반기 보고서와 3분기 보고서를 분석해봤다. 임원은 55명(2015년 6월 기준)에서 46명(2015년 9월 기준)이 됐다. 9명이 줄었다. 15% 감축했다. 회사가 발표한 숫자의 절반에 불과했다.

“임원인 상무‧전무는 자르지 않고, 퇴직 임원인 고문만 정리하고 30% 감축했다는 얘기가 파다 합니다. 남상태, 고재호 전 사장들이 적자 사태 주범으로 꼽히잖아요. 지금 남아있는 상무나 전무들이 그들하고 똑같은 사람입니다. 누가 사장이 됐든 이런 일이 벌어졌을 거예요. 그들이 회사를 나가기는커녕 아직도 중요한 의사 결정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대우조선해양 현실이 이런데, 하루 아침에 바뀌겠습니까?”

분을 삭이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임원들이 공을 세운다며 저가 수주 남발하고, 뒤처리는 전부 설계와 생산 실무자들이 떠 안습니다. 임원들이 하는 일은 실무 직원들 쪼는 것밖에 없어요. 세계 수주 잔량 1위. 개나 주라고 하세요. 저가 수주 남발해서 이 사태가 일어난 것이 아닙니까?”

18일 오전 대우조선해양 설계팀이 근무하는 오션플라자 전경

목이 타는 듯 했다. 빨대로 음료수를 한 참 마신 뒤 이야기를 이어갔다.

“설계팀 직원들도 불만이 많습니다. 자기 역량의 120%, 150%를 발휘하자고 하는데, 역량보다 3~4배 많은 일감을 주면 제대로 된 설계 도면이 나오겠습니까? 설계 도면이 제대로 안 나오니 현장에선 같은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합니다. 그러고도 인도일을 맞추면 그게 기적이지요.”

“일주일 넘게 설치한 고압 전선을 다 뜯고 다시 설치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해외 선주들의 갑질 탓만 하는데 공정과 품질 관리를 못하는 내부 사정이 더 큰 원인입니다.”

그는 설계 프로젝트 팀원들에게서 들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얼마 전 거제, 서울의 모든 설계 담당 직원들이 반대했던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이미 하는 일이 너무 많아 새로운 대형 프로젝트를 또 맡으면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못 하는 상황이었답니다. 실무진이 ‘이 프로젝트 수주하면 우리 모두 죽습니다’라고 임원진에 보고했더니 일주일 뒤에 ‘무조건 하라’고 지시가 내려왔답니다. 그러면서 담당 임원이 메일을 보내 ‘실무진이 열심히 일을 안 해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질책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회사가 정말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괴로운 표정이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거제의 어둠은 더 짙어졌고, 기온은 더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