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가 없는 자동차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심 도로로 나와 달렸다.

22일 오전 서울 삼성동 경기고등학교 정문 앞. 검은색 '제네시스'가 서서히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영동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향한 이 승용차는 몇 차례 차선을 바꾸고, 옆에서 서행하던 다른 차량을 추월하며 1.5㎞가량을 달렸다.

2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를 달리는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 운전석에 운전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날‘2015 창조경제박람회 미래성장동력 챌린지 퍼레이드’에 나온 자율주행자동차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실제 도로에서 주행했다.

코엑스 동문 부근까지 온 이 승용차는 우회전을 하고 20여m 더 달린 뒤 멈췄다. 이어 승용차 뒷좌석에서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현대차 박동일 전자기술센터장(상무)가, 조수석에선 현대차 연구원이 내렸다. 운전석은 텅 비어 있었다. 이 승용차는 현대자동차가 개발한 자율주행차(무인차)였다. 처음으로 연구소나 시험주로가 아닌 도심 도로를 달린 것이었다.

이 차에는 전방·측방에 나타나는 물체를 감지할 수 있는 레이저 스캐너와 레이더, 보행자·차선 감지용 카메라, 고감도 위성항법장치(GPS) 등 현대차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술이 들어 있다. 인터넷 기업 구글 등이 개발하고 있는 무인차가 외부에 카메라 등 각종 장치를 매달고 있는 것과 달리, 현대차의 무인차는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적인 제네시스와 차이점이 거의 없다. 각종 장치를 모두 차량 안쪽에 설치하는 등 디자인에도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박동일 현대차 상무는 "2025년이면 운전자가 긴급한 상황에만 대비하면 되는 무인차를 양산할 수 있고, 2030년이면 사람의 도움이 전혀 필요 없는 완벽한 무인차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국내 무인기(드론) 업체‘숨비’가 개발한 드론이 구명 튜브를 원하는 지점에 정확히 떨어뜨리고 있다. 이런 기술이 상용화되면 해상 인명 구조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이날 무인차 시연은 미래부와 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가 개최한 '미래성장동력 챌린지 퍼레이드'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국민대·서울대·KAIST·계명대 등 7개 대학이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도 선보였다.

이들은 영동대교 북단에서 코엑스까지 이어지는 3㎞ 구간에서 속도제한 교통표지판·신호등 인식, 자전거·정지 차량 회피 등 다양한 과제에 도전했다. 일부 차량이 차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과제를 큰 문제 없이 수행했다.

주최 측은 행사를 위해 이날 오전 9시 30분부터 1시간 반가량 영동대로 일부를 통제했다. 유시복 자동차부품연구원 자율주행기술연구센터장은 "아직까지 완벽하지 않은 기술이기 때문에, 도로를 통제한 상태에서 실제 도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상황을 가정해 시연했다"면서 "고층 빌딩이 많은 도심 도로에서는 GPS 수신이 어렵고 차선이 똑바르지 않은 등 실험실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어서 연구진들에게는 좋은 경험이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개발한 다양한 무인비행체(드론·drone) 신기술도 이날 공개됐다. 세종대 연구팀은 코엑스에서 400㎞ 이상 떨어진 제주도 남쪽 마라도에 있는 드론을 LTE(4세대 이동통신)망으로 연결해 실시간 조종하고 드론이 찍은 영상을 주고받는 기술을 공개했다. 울산과학기술원 연구팀은 영동대교 위에서 한 사람이 여러 대의 드론을 동시에 조종하는 '군집(群集) 비행' 기술을 선보였고, 드론 업체 숨비는 드론으로 구명튜브를 옮겨 조난자에게 떨어뜨려주는 장면도 시연했다. 이용민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이런 기술이 상용화되면 산불 같은 위험 현장이나 해상 조난 등에서도 자유자재로 드론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양희 장관은 "자율주행차와 드론은 가까운 시일 내에 우리 생활을 완전히 바꿔놓을 새로운 산업"이라며 "관련 제도와 규제를 정비, 확실한 신성장 동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