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경기 김포 한강신도시에서 분양했던 아파트 단지 2곳의 희비(喜悲)가 엇갈렸다. A사의 아파트(550가구)는 평균 9대 1의 경쟁률로 모든 가구가 마감됐다. 반면 B사의 아파트(1228가구)는 절반 이상이 미달됐다. B사 아파트가 브랜드와 단지 규모 면에서 앞섰지만 청약 성적은 정반대 결과가 나온 것.

업계에서는 '분양가 차이'를 승부처로 본다. 김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B사 아파트는 3.3㎡당 평균 분양가가 주변 시세와 비슷한 1025만원이었지만, A사는 주변 시세보다 100만원 이상 저렴한 990만원으로 책정해 '인기몰이'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최근 공급 과잉 우려가 나오면서 아파트 분양 시장이 분양가에 따라 성적표가 갈리는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입지와 브랜드 파워만 믿고 고가(高價)에 분양한 단지는 미계약이 속출하고 있다. 반면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단지에는 수요자가 몰리며 선전(善戰)하고 있다. 김광석 리얼투데이 이사는 "최근 주택 시장은 철저하게 실수요자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어 가격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며 "비싼 가격에도 단기 차익을 노리고 뛰어들었던 투자자들이 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다"고 말했다.

◇분양가에 따라 희비 엇갈려

최근 고분양가 논란이 일었던 단지들은 시장에서 냉정한 평가를 받고 있다. 평균 분양가가 3.3㎡당 4000만원을 넘었던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 푸르지오 써밋'은 지난달 1순위 청약에서 평균 21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일반분양 171가구 중 저층 20여가구는 미분양됐다. 반포동의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입지에 비해 비싸다' '꼭지 잡는 것 아니냐'며 계약을 포기한 당첨자들이 여럿 있다"고 말했다. 경기 화성 서부권과 안성, 평택 지역에서 시세보다 높게 분양됐던 일부 아파트도 미계약이 발생했다. 이 지역들은 경기 화성 동탄2신도시의 인기에 편승해 주변 아파트 시세가 3.3㎡당 900만원대인데도 1000만원 이상으로 공급됐다.

이른바 '착한 분양가'로 승부했던 단지들은 계약 실적도 좋다. 서울 '은평뉴타운 꿈에그린'과 동대문구 '래미안답십리미드카운티'는 각각 주변 시세보다 10%가량 싼 가격에 공급돼 계약 5일 만에 조기 완판(完販)하는 데 성공했다. 주변 전세금 수준으로 분양가를 책정했던 경기 용인 'e편한세상 용인 한숲시티'도 계약이 순조롭다. 분양 관계자는 "6800가구의 방대한 물량이지만 계약 첫날에만 계약 상담을 위해 모델하우스에 6000여명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실수요자는 가격에 민감"

최근 아파트 분양 성적이 분양가에 좌우되는 이유는 이전과는 시장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먼저 올 들어 고공행진하고 있는 분양가에 소비자들이 피로감을 느끼면서 고분양가 아파트를 기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지방 대도시 중심으로 공급 과잉론이 고개를 들면서 자칫 비싸게 샀다가 상투 잡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도 원인이다.

고분양가 아파트의 경우 당첨 후 분양권 전매로 시세 차익을 보려던 투자자들이 생각만큼 웃돈이 붙지 않으면서 계약을 포기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청약률은 높았는데 정작 계약률이 낮은 아파트가 늘고 있다. 최근 부산 동래구에서 분양한 C아파트는 1순위에서 평균 45.8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지만 초기 계약률은 30%대에 그쳤다.

부산 사상구에서 분양했던 D아파트도 28.3대 1로 1순위에서 청약을 마감했지만 30%가량이 미계약됐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분양가가 소비자의 아파트 구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올해 사상 최대인 48만가구의 신규 분양이 쏟아질 만큼 공급이 많았기 때문에 합리적인 가격이 아니면 실수요자가 따라붙기 힘들다는 것이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명동스타PB센터 팀장은 "건설사들도 실속을 따지는 실수요자를 겨냥해 합리적인 분양가를 책정하는 상품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