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게 내리던 비가 잠시 멈췄다. 11월 16일 밤 11시 30분.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옆 대우병원 장례식장 별관. 대우조선해양 하도급업체 직원 전모(44)씨의 빈소를 찾았다.

전씨는 11월10일 옥포조선소 2도크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화재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사경을 헤매던 전씨는 3일 만에 숨을 거뒀다.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장모(50)씨와 같은 협력 업체 소속이다.

전씨 빈소 앞에 유족 이름과 ‘발인 미정’, ‘장지 미정’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빈소는 전씨의 부인 조모(44)씨가 지켰다.

전씨는 조선소에서만 23년쯤 일한 베테랑 용접사였다. 부인 조씨와 사이에서 딸을 낳았다. 하지만 병을 앓던 아이는 5살 되던 해 하늘나라로 갔다.

지난 9월 전씨 부부는 입양 기관을 통해 갓난아이를 데려왔다. 전씨가 숨졌고, 아이는 다시 입양 기관으로 돌아갈 것 같다고 했다. 갓난아이는 새 부모를 찾을 수 있을까?

검은색 상복을 입은 부인 조씨는 많이 피곤한 모습이었다. 이날 밤 회사 측 보상 조건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했다.

“작년에 동생이 병으로 죽고, 남편만 의지했는데…”

“동생이 너무나 허무하게 갔다. 사고 원인이 나오기 전까지 회사와 합의하면 안된다고 했지만, 제수가 너무 안쓰러워 더는 반대도 못하겠고….”

전씨의 친형은 한숨만 내쉬었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화재사고로 숨진 전모씨 빈소가 마련된 대우병원 장례식장 별관 뒤로 조선소 불빛이 보인다.

17일 아침 8시쯤. 전씨 동료들이 장례식장을 찾았다. 직영 직원, 회사 관계자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전씨가 일한 협력 업체 대표 여모(63)씨는 “속이 쓰려 아무것도 삼키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는 직원 10명과 함께 화장터, 납골당을 다녔다.

“평생 조선업계에서 일했는데, 요즘처럼 힘들었던 적이 없어요. 직원 두 명이 비명에 가고, 많이 다치고...가슴이 꽉 막혀 있습니다.”

여씨의 입술이 바싹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발인이 끝났다. 조씨는 “남편이 죽은 이유라도 확실하게 알고 싶다. 사람이 죽은 만큼 억울한 것이 많다”고 했다.

“형수님 힘내세요.”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던 남편의 동료들이 떠났다. 장례식장은 텅 비었다.

지난 10일 오전 일어난 대우조선 화재 사고로 2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 정부는 이 사고의 책임을 물어 대우조선의 LNG 건조 작업을 중단시켰다. 줄잡아 1000명의 근로자가 다른 현장에 투입됐다.

현장에서 일하던 한 작업자는 “대우조선이 공기 단축을 위해 최근 공법을 바꿨다. 그래서 사고가 자꾸 터진다. 사람 더 안 죽이려면 원래 공법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같은 공법으로 수십 번 공사했다. 정성립 사장 지시로 화재 방지법을 연구하고 있다. 내연성 제품도 개발 중이다”고 했다.

지난 8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 원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조사 중이다. 사고 원인이 언제 밝혀질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그래도 대우조선해양 근로자들은 다시 일해야 한다. 회사는 4조원 적자를 메꿔야 하고, 현장 근로자들은 생계를 이어가야 한다. 옥포의 새 아침이 다시 밝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