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미 육군의 에버딘 시험소. 군장을 한 군인 한 명을 노트북 등을 든 가벼운 차림의 12명이 따라가고 있었다. 짐 무게로 따지면 군인이 가장 힘들어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뒤따르는 사람들이 더 힘들어했다. 군인은 군복 안에 근력(筋力)을 높여주는 '외골격(外骨格·exoskeleton)' 로봇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골격 로봇은 곤충처럼 몸을 지탱하는 골격이 밖에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영화 '아이언맨'이나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 주인공이 입고 나와서 잘 알려져 있다. '입는 로봇(wearable robot)' 또는 '엑소수트(exosuit)'라고도 부른다. 보통 팔다리에 로봇처럼 금속성 뼈대를 입히고 이를 기계의 힘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미 육군 시험소에 등장한 외골격은 밀착형 운동복 형태여서 군복 안에 입어도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바로 '소프트(soft)' 외골격이다.

자연스러운 보행 리듬 구현

하버드대 와이스연구소의 코너 월시 교수가 개발한 소프트 외골격은 와이어의 힘으로 움직인다. 허리에 찬 장치에는 릴 낚싯대처럼 와이어가 감겨 있다. 와이어는 넓적다리와 종아리를 감싼 천과 신발 뒤축으로 연결돼 있다. 다리가 움직이려는 것을 옷에 부착된 센서가 감지하면 컴퓨터가 허리의 와이어 모터에 신호를 보낸다. 다리를 들어올릴 때 와이어도 같이 당겨 훨씬 적은 힘으로 다리를 움직일 수 있다. 실험에서는 자기 몸무게의 30%에 해당하는 짐을 지고도 와이어의 도움으로 7%나 운동 효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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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골격 로봇의 효시는 1960년대 GE 연구소가 미 해군의 지원을 받아 개발한 '하디맨(Hardiman)'이다. 680㎏ 무게의 하디맨은 그만큼의 무게를 들 수 있게 설계됐다. 이후 한동안 잊혔던 외골격은 국방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연구비를 지원하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2004년 UC버클리가 개발한 '블릭스(BLEEX)'를 장착하면 80㎏ 짐을 져도 몸에는 불과 2㎏의 부담만 갔다. 2011년 록히드마틴사(社)는 블릭스를 구보까지 가능한 '헐크(HULC)'로 발전시켰다. 헐크를 입으면 한 번 배터리 충전에 90㎏ 짐을 지고 20㎞까지 갈 수 있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달리기도 가능했다.

하지만 헐크는 상용화 직전에 착용자의 체력을 오히려 떨어뜨린다는 역효과가 확인됐다. 시험자가 헐크를 장착하고 러닝머신 위를 걷자 심장박동이 평소보다 26% 높아지고 산소 소비도 39% 늘었다. 휴 허 MIT 교수는 '사이언스'에 "지금까지 개발된 금속성 외골격은 워낙 부피가 커서 오히려 사람의 자연스러운 보행 리듬을 방해한다"고 밝혔다. DARPA가 소프트 외골격 지원으로 방향을 튼 것도 이 때문이다.

재활치료에도 효과

외골격은 군사용뿐만 아니라 의료용으로도 유용하다. 일본 쓰쿠바대 연구진은 재활용 외골격 로봇 '할(HAL)'을 개발했다. 하지만 이런 외골격은 가격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이나 되고 무거워서 넘어지면 사람이 혼자 힘으로 일어나기 힘들다. 특히 금속 장치들이 밖으로 드러나 있어 환자의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도 있다.

반면 소프트 외골격은 옷 안에 장착해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할 수 있다. 재질도 대부분 직물이고 구조도 간단해 가격은 훨씬 저렴할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보행 리듬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점이 매력이다. 하버드대 와이스연구소는 최근 뇌졸중 환자 3명에게 소프트 외골격을 착용시키고 실험했더니 걸음과 걸음 사이 시간이 11% 줄어들고 균형감도 크게 높아졌다고 밝혔다.

미국 카네기멜런대의 박영래 교수도 올 초 재활용 소프트 외골격을 개발했다. 무릎까지 오는 이 로봇은 공기 압력으로 수축되는 인공 근육을 이용한다. 기존에는 보행을 전적으로 금속성 보조기에 의존해 근육이 퇴화하는 단점이 있었다. 박 교수팀의 소프트 외골격은 실제 다리 근육의 움직임을 그대로 모방해 오히려 근육 사용을 돕는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딱딱한 외골격도 나름대로 진화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기존 외골격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영화 '아이언맨'ㄴ에 나오는 외골격을 만든 할리우드 특수효과 업체를 찾았다. SF영화의 상상력으로 과학을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미 국방부는 2018년까지 군인의 신체 상태를 파악하는 센서와 전투 정보를 전달하는 컴퓨터 통신체계를 갖춘 전신형 외골격의 시제품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