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관광객들이 시내면세점 계산대에서 서서 오랜시간 기다린다. 30분까지는 기다릴 수 있는데 그 이상 넘어가면 한계가 온다. 이번에 시내면세점을 추가로 허가해 줄을 30분 이상 서지는 않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올해 1월 시내면세점 특허 4개(서울 3개, 제주 1개)를 추가 허가하기로 했을 때, 기획재정부 관계자가 한 말이다. '왜 꼭 30분일까. 공항 수속이 짧을수록 좋듯이 면세점 계산대에 줄 서는 시간도 짧을 수록 좋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14일 시내면세점(서울 3개, 부산 1개) 경쟁입찰 결과가 나온다. 이번 입찰은 올해 1월 공고해 7월 선정한 추가특허와 달리 기존 특허를 갱신하는 것이다. 서울은 SK워커힐, 롯데 본점, 롯데월드점이며 부산은 신세계다. 기존에는 면세점 특허권이 10년 단위로 자동 갱신됐으나 2013년 관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특허 기간이 5년으로 단축되고 특허를 재입찰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당시 야당이 면세점 특허가 재벌 대기업 면세점에 대한 '특혜'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 7월 시내면세점 4곳 추가특허 선정 입찰에서는 24개 기업이 뛰어들어 각축전을 펼쳤는데 이번에도 공격과 방어 경쟁이 치열했다. 총수나 CEO가 국민 지지를 호소하는가 하면 '상생기금 1500억원 조성'(롯데면세점) '영업이익 10% 이상 환원'(두산) '외국인 관광 1번지 조성'(신세계·SK네트웍스) 등 공약을 쏟아냈다.

면세점 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하지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면세점 20여개를 허가했지만 롯데, 신라 등 몇 개를 제외하고는 경쟁력이 떨어져 문을 닫았다. IMF 외환위기 이후 폐업한 면세점들이 속출했으며 한진과 AK 등의 대기업도 경영 악화로 면세점 특허를 반납했다.

면세점 사업이 황금알을 낳게 된 것은 최근 중국 관광객 급증과 한류 열풍 때문이다. 국내 면세점 매출은 지난해 8조3000억원을 기록했지만 3년 전인 2011년에는 5조3700억원이었다. 2005년에는 2조2400억원, 2001년에는 1조7800억원에 지나지 않았다.

상황이 호전되니까 면세점 업체들이 많은 이익을 냈고 정치권의 집중 견제를 받게 된 것이다. 2013년 관세법 개정 이후 지금까지도 여전히 면세점 특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면세점 매출의 0.05%(중소중견기업 0.01%)인 특허수수료가 너무 낮으니 이를 10배인 0.5%로 높이거나 통신사 주파수처럼 입찰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내면 선정되는 경매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면세점 특허 선정기준이 불투명하다며 이를 정부가 맘대로 하는 법 시행령이 아니라 국회가 통과시켜야 하는 관세법에 명시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면세점 고객이 늘어나고 사업을 하고자 하는 업체도 많은데 왜 진입장벽을 세워 '특혜'를 보장해 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야당은 면세점 사업을 ‘재벌 특혜'로 규정하고 비판할 게 아니라 아예 특혜를 없애려고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미 시장을 선점한 기존 면세점 업체들의 논리라고 하겠지만, 선점이 없는 시장이 언제 얼마나 있었던가. 완전히 자유경쟁을 하자는 얘기다.

면세점 특허 허가제를 신고만 하면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는 신고제로 바꾸거나 그게 지나치다면 일정 요건 충족시 사업을 할 수 있는 등록제로 바꾸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대부분이 면세점 특허 허가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관광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관세청은 지난 7월 서울 3개, 제주 1개의 시내면세점을 허가하면서 “이번 추가 특허로 인해 약 3000억원의 신규 투자 및 4600여명의 고용창출을 기대한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면세점 특허 허가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내세우는 논거는 세금이 면제되는 특성상 면세점을 통한 밀반입 우려가 있고 면세물품의 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 발달로 물품 관리나 통관 등이 훨씬 간편해졌고 더 철저하게 관리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그래도 밀반입이 우려된다면, '삼진 아웃제'와 같이 몇 번 밀반입이 적발될 경우 영원히 면세점 사업을 못하게 하는 등 사후규제를 하면 될 일이다.

정부나 정치권은 대기업 면세점 '특혜'니 관리의 어려움을 내세울 게 아니라 우리나라 면세산업을 어떻게 육성할 수 있을지, 외국 관광객들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끌어올 수 있을지부터 우선 고민해야 한다.

PS. 한마디 덧붙이자면 공항면세점 또는 시내면세점과 사후면세점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공항면세점과 시내면세점은 보세판매장으로 관세, 개별소비세, 부가가치세 등이 다 면제된다. 사후면세점은 물품을 구입하고 공항 등 지정장소로 가서 증빙을 받으면 부가가치세만 환급해 주는 제도다. 우리나라에도 사후면세점이 1만700여곳 있다. 일본은 옷가게나 잡화점, 약국 등 사후면세점 판매장에서 물품을 살 때 세금을 바로 환급받을 수 있는데, 우리 정부도 이런 사전면세 제도를 내년부터 시행한다. 구체적 기준은 시행령으로 정하는데,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100만원 미만 소액(부가가치세 환급액으로는 10만원 미만)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