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일 경기도 오산 소재 아모레퍼시픽 뷰티 사업장에서 창립 70주년 기자간담회를 끝낸 서경배(53·사진)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에게 "요즘 어떠신가"라고 안부를 묻자 대뜸 "최근 청(淸)나라 2대 황제인 태종(太宗) 홍타이지(皇太極)에 대한 책을 3권 읽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소문난 '독서광(讀書狂)'다운 대답이었다.

홍타이지는 인구 100만명의 만주족 부족국가가 1억명의 명나라를 정복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 민족에게는 병자호란을 일으킨 적국의 황제였지만, 중국 역사에는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홍타이지처럼 중국과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화장품이라는 상품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서 회장은 홍타이지가 강조했던 끈기, 내부를 다지는 조직력, 타 민족도 끌어안았던 포용력 등에서 경영에 쓸 '통찰력'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서 회장은 "중국에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중국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서 회장은 "어려서부터 공상하고 상상하는 것을 좋아해서 호기심이 많았고 책 읽기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의 좌우명은 '항상 정진(精進)하라'다. 좌우명대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배우기 위해서는 자유롭게 형식에 매달리지 않고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하며, 생각하는 힘을 키우려면 독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서 회장의 지론(持論)이다.

서 회장이 책을 주로 읽는 공간은 비행기나 차 안이다. 중국, 미국, 동남아시아 등 해외 출장이 워낙 많기 때문에 집에서 앉아 책을 읽으려면 시간이 부족하다. 그는 "전에는 1년에 40권은 읽었는데, 요즘엔 바빠서 20권 읽기도 빠듯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읽을 책은 주로 신문의 책 면을 주의 깊게 보면서 고르고 아는 사람이 추천해주는 경우도 있다. 역사·경영·과학·문화 등 여러 분야를 망라한다. '책벌레'로서 서 회장의 책 친구이기도 한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에게는 심야에 전화를 걸어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명저(名著)인 '총 균 쇠'의 페이지를 명시하며 명확한 의미를 묻고 새벽 2시까지 토론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서 회장의 독서 스타일은 약간 색다르다.

"책을 읽을 당시 생각이나 기억하고 싶은 구절을 책 표지 뒤에 메모합니다. 이 메모만 보면 책을 다시 다 읽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는 책을 읽으면서 생긴 아이디어를 사내 게시판 등을 통해 임직원들에게도 전달한다. 아예 읽은 책 중에서 일부를 국내 계열사 100여명 임원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그가 올해 선물한 책은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제국을 설계한 사람들' 등 6권이다.

그는 2013년 2월부터 현재까지 서울 청계천에 있는 본사나 연구소, 공장 등에 25대의 원두 커피 기계를 들여놨다. 커피 값은 물론 무료(無料)다. "직원들이 커피 값을 아껴 책을 사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설치한 겁니다.독서는 임직원들에게도 꼭 추천하고 싶은 좋은 습관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