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의 전자 상거래 기업 라쿠텐은 급진적인 영어 공용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라쿠텐은 2015년 5월, 직원들의 평균 토익 점수가 처음으로 800점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입사 2년 안에 회사가 요구하는 수준의 영어 능력을 충족시키지 못한 직원은 해고하는 등의 강력한 영어 사용 정책을 펼친 결과다. 라쿠텐이 영어 공용화 정책을 시작했던 2010년의 직원 평균 토익 점수는 530점에 불과했다.

지금과 같은 성과를 유지한다면 라쿠텐은 아시아에서도 영어 사용 빈도가 낮은 한국과 일본을 통틀어 최초로 영어 공용화에 성공한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영어 공용화를 시도했던 한국과 일본의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를 중단했거나 제한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1999년 닛산은 프랑스 르노와 합병하며 르노에서 파견된 50여 명의 외국인 경영인을 지원하고 르노와의 업무 공조를 강화하기 위해 영어 공용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이는 외국인 임직원과의 공동 업무 영역, 그 중에서도 프레젠테이션과 사내 공식 커뮤니케이션 영역에 한정되었다.

한국의 LG전자는 2002년 창원 DA사업본부의 영어 공용화 경험을 바탕으로 2006년부터 영어 공용화를 전체 구성원으로 확대했다. 목표는 2008년까지 영어 공용화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당시 남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진행된 이 정책은 해외 법인장의 30%를 외국인으로 선임한다는 목표를 세우는 등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2010년 남용 부회장이 퇴임하면서 영어 공용화 사업은 동력을 잃었다. 게다가 외국인 임원들 다수가 물러나면서 영어 공용화의 시급성이 퇴색했을 뿐만 아니라 영어 수요 자체가 급격히 감소했다.

LG전자의 뒤를 이어 영어 공용화를 추진했던 SKT, 두산, 삼성전자 등도 2010년을 기점으로 손을 놓았다. 이들 1세대 영어 공용화 추진 기업들의 실패 사례 때문인지 2010년 이후로는 영어 공용화를 언어 정책으로 채택하는 한국 기업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점점 글로벌화되어 가는 기업 환경 속에서 전체 구성원이 기업 문화를 공유하고 조직 내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영어 공용화 외에 딱히 대안이 없는데도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 다른 비영어권 국가의 기업들은 글로벌 기업 문화를 구축하는 데 있어 영어 공용화가 갖는 필연성을 보여준다. 모국어인 불어가 아닌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한 스위스 기업 네슬레가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세계 최대 식품 기업으로 성장한 이 기업의 성공 비결을 적극적인 세계 시장 공략으로 설명하는데, 영어를 사용하는 사내 문화가 이를 가능하게 한 주요 요인 중 하나다.

CEO를 포함한 임원의 90%가 비스위스인이고 전체 직원의 98%가 해외에서 근무하는 환경에서 모국어를 고집했다면, 네슬레는 전체 매출의 98%를 해외에서 올리는 대표적인 다국적 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에서도 네슬레와 같은 기업이 나올 수 있을까? 라쿠텐의 변혁은 희망적이다. 라쿠텐의 CEO 미키타니 히로시는 본인의 영어 능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이단아 같은 열정으로 영어 공용화에 회사의 미래를 걸고 있다.

CEO가 중심이 된 이러한 정책은 실무 부서 중심으로 영어 공용화를 시도했던 과거의 실패 사례와는 다른 결과를 기대하게 만든다. 일본의 경우 라쿠텐 외에 유니클로의 모기업인 패스트리테일링, 브리지스톤 등의 기업이 영어 공용화를 추진 중이다.

라쿠텐 도쿄 본사에 전시된 영어 공용화 홍보 자료. 라쿠텐이 적극적인 영어 공용화 정책을 유지한다면 한국과 일본을 통틀어 최초로 영어 공용화에 성공한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베 정부의 적극적인 세계화 정책은 이들 일본 기업의 도전을 뒷받침한다. 일본 사회와 정부는 사실 오랫동안 영어 공용화와 세계화에 주목해왔다. 1872년 메이지 정부의 초대 문부장관 모리 아리노리가 국제무역의 중요성을 들며 영어를 국어로 삼자고 주장한 이래 영어 공용화는 일본 사회에서 종종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비교적 최근인 2000년에도 영어 공용화가 진지하게 논의되었다. 당시 오부치 게이조 수상의 자문위원회인 ‘21세기 일본의 구상 간담회’가 영어 공용화를 건의했던 것이다. 오부치 수상은 간담회의 제안을 공식적으로 추진하지는 않았지만 의회 연설에서 “21세기에는 누구나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회로 만들겠다”라고 선언할 정도로 영어 공용화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아베 정부는 이런 전통을 계승해 세계화에 다시 박차를 가하고 있다. 후쿠오카, 오사카 등을 국제전략특구로 지정하여 외국인 유학생의 취업과 창업을 지원하고, 외국인 가사 도우미 고용을 허용하는 등 과감한 이민 정책을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실질적으로 일본은 영어 공교육을 확대하고 영어 매체를 활용한 대학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등 국가 영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다수의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은 1990년대 이후 일본보다 영어 경쟁력이 강한 개방적 국가라고 자평해왔다. 한국이 세계화 경쟁력을 바탕으로 일부 산업에서 일본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일본 지도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기업이 세계화의 도전에 계속 안이하게 대응한다면 라쿠텐과 같은 혁신적 일본 기업에 뒤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세계화 경쟁력을 재무장하는 그 첫걸음으로 정부와 기업은 영어 경쟁력 강화에 힘써야 한다. 그리하여 한일 양국 최초의 영어 공용화 성공 기업이 한국에서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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