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IT(정보기술) 업계의 부흥을 몰고 온 인물들은 미국의 '얼간이(nerd)'들이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등은 허름한 차고(garage)나 기숙사 등에서 창업해 세계를 뒤흔들 서비스와 제품을 대거 출시했다. 미국에 이어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것은 중국의 '왕서방'이었다.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를 만든 마윈, 세계 2위 포털 업체 '바이두'의 리엔훙, 모바일 메신저 '텐센트'의 마화텅 등은 막강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중국 IT업체들을 세계 선두권으로 끌어올렸다.

최근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오는 이들은 바로 인도의 '코끼리'들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인도계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등장해 주요 기업을 장악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나렌드라 모디(Modi) 총리가 앞장서서 IT 산업 부흥을 추진하고 있다. 바야흐로 인도 코끼리가 날아오르는 시기인 것이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왼쪽) 총리가 지난달 27일(현지 시각) 미국 페이스북 본사를 방문해 마크 저커버그 CEO와 포옹하고 있다.

◇모디의 '디지털&메이크 인디아'

지난달 세계 정상들은 미국으로 모였다.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당시 모인 수십명의 세계 정상 중 유독 행보가 눈에 띄는 인물은 바로 인도의 모디 총리였다. 그는 유엔 총회에 참석한 직후 실리콘밸리로 날아가 꼬박 이틀을 보내며 주요 IT 기업의 창업자, 최고경영자(CEO) 등을 만났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CEO와는 함께 타운홀 미팅을 진행하면서 세계 각지의 페이스북 사용자들과 소통했다. 이뿐만 아니라 애플의 팀 쿡,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구글의 순다 피차이 등 실리콘밸리의 주요 CEO들과 모두 만났다.

모디 총리는 '디지털 인디아', '메이크 인디아'라는 두 개의 축을 가지고 인도 경제 살리기에 나섰다. 디지털 인디아란 2019년까지 총 180억달러(약 20조원)를 투자해 인도 전체를 IT와 인터넷으로 묶겠다는 것이 골자다. 인도 전역의 25만개 촌락에 초고속인터넷을 연결해 어디서든 무선 인터넷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원격 진료 서비스 제공, 사물인터넷 연구소 설립 등으로 도시·시골 간 인프라 차이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모디 총리는 "12억 인구 모두가 디지털 고속도로로 연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2020년까지 휴대전화와 통신장비 등 인도가 필요한 대부분의 전자제품을 인도에서 만들 것이라고도 밝혔다.

또 모디 총리는 메이크 인디아 전략도 강화하고 있다. 디지털 인디아가 인도인의 생활 인프라 향상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면, 메이크 인디아는 제조업을 통해 성장동력을 찾겠다는 의미다. 본래 세계의 공장으로 군림했던 곳은 중국이었다. 하지만 인건비가 급증하고, 중국 내부에서 기업들이 성장하면서 점차 글로벌 기업들의 공장은 동남아시아 등으로 하방하는 추세다. 이런 기업들을 인도가 직접 유치해 제조업을 성장시키겠다는 것이다. 인도는 애플 아이폰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한 폭스콘과 손잡고 공장을 유치하기로 했다. 폭스콘은 향후 인도에 50억달러를 투자해 생산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모디 총리는 방미 기간 중 만난 팀 쿡 CEO에게 애플의 아이폰도 인도에서 생산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리콘밸리에는 인도 CEO 열풍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인도계 CEO인 구글의 순다 피차이(위쪽)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인도에 모디 총리가 있다면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주요 기업의 CEO 자리를 꿰찬 '인도계 마피아(india mafia)' 열풍이 거세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기업 구글의 순다 피차이 CEO,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 사티아 나델라 CEO가 인도계다. 이뿐만 아니다. 포토샵으로 유명한 소프트웨어 업체 어도비의 샨타누 나라옌 CEO, 일본 소프트뱅크의 니케시 아로라 CEO도 인도계다. 중국, 한국, 일본계는 물론이고 흑인·히스패닉계 CEO도 찾아보기 힘든 실리콘밸리에서 이례적이다.

이들은 대부분 1980년대 인도 정부가 펼친 소프트웨어(SW) 인재 육성 정책에 따라 정부 지원금을 받아 미국 유학을 떠났다. 이공계에 강한 인도 인재들의 특성 덕분에 세계 각지의 IT업체에서 엔지니어로 자리를 잡았고 결국 CEO까지 꿰찬 것이다.

인도계 CEO들은 서로 협력·논의가 활발하다. 지난달 구글과 MS간에 전격 타결된 특허소송 종결이 대표적이다. 양사는 오랫동안 와이파이, 스마트폰 등과 관련된 특허를 두고 미국, 독일 등에서 치열하게 소송전을 펼쳐왔다. 그런 가운데 MS의 나델라 CEO가 작년에 취임한 데 이어 올해 구글의 피차이 CEO가 선임되면서 두 인도계 CEO들이 양사 간 갈등을 매듭지었다는 것이다.

또 피차이 CEO는 모디 총리의 방미 기간 중에 만나 내년 말까지 인도 500여개 철도역에 와이파이를 무료로 설치해주는 선물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피차이 CEO는 "모디 총리의 디지털 인디아 정책에 힘을 실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