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에 사는 직장인 김민화(35)씨는 감기가 잘 낫지 않아 집 근처에 있는 서울대병원의 내과 진료를 예약했다. 서울대병원은 진료의뢰서를 가져오면 곧바로 진료받을 수 있다고 했다. 김씨는 동네의원에 들러 “진료는 받을 필요없고, 큰 병원 진료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진료의뢰서만 발급해달라”고 말했다.

김씨가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결과 특별한 건강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김씨는 대형병원에 계속 다닐 생각이다. 김씨는 “대형병원 외래 진료비가 동네의원에 비해 1만~2만원 더 비싸지만, 동네의원은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3일 의료계에 따르면 감기, 소화불량 등 가벼운 질환의 환자들이 동네의원을 이용하지 않고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 경증 환자들도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일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의사협회가 2005~2014년 10년간 병원 종류별로 건강보험 재정에서 부담한 외래 진료비를 조사한 결과, 동네의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70%에서 지난해 58%로 12%포인트 줄었다. 반면 병원의 외래 진료비 비중은 30%에서 42%로 늘었다.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인 상급종합병원도 동네의원 환자를 그대로 받고 있었다. 의료법에는 52개 질환의 경증 환자가 상급종합병원에 왔을 때 동네의원으로 돌려보내도록 권고하도록 돼있다. 치료방법이 동네의원과 병원의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의협 조사결과 지난해 상급종합병원 외래환자 중 16%인 88만명은 동네의원에서 진료해도 되는 경증 질환이었다. 하지만 이 중 동네의원으로 돌려보낸 환자는 0.2%인 1397명에 불과했다. 소위 ‘빅5 병원’이라 불리는 매출액 상위 5개 병원도 동네의원으로 경증 환자를 보내지 않았다. 지난해 삼성서울병원은 6만3872명의 경증 환자 중 510명만, 서울아산병원은 5만1249명 중 21명, 서울대병원은 4만4945명 중 7명, 세브란스병원은 5만568명 중 10명을 동네의원에 보내는데 그쳤다.

환자들의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문제되는 이유는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병원의 경증 질환 진료비는 평균 3만 4543원~4만 6850원으로 동네의원의 1만 5622원 보다 2.2~3배 비싸다. 이 중 환자 부담금 30~50%를 제외한 나머지는 건강보험 재정에서 부담한다.

의료계는 환자들의 자유로운 병원 선택을 제한해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는 지난해 경증 환자가 모두 동네의원에서 진료를 받았다면 1482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아낄 수 있다고 밝혔다.

의협이 제시한 동네의원 이용시 건강보험 재정 절감액 추정치. 경증환자가 모두 동네의원을 이용했을 때 지난해 약 1483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아낄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서인석 의협 보험이사는 “가벼운 질환의 환자는 동네의원에서 진료를 받게 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며 “환자들이 자유롭게 병원 선택을 할 수 없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균 한국병원경영연구원 연구실장은 “경증 질환은 동네의원에서 진료받는 캠페인을 펼치거나 대형병원 이용시 환자 부담금을 인상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되는 정책은 정부가 나서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2011년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기본계획’을 수립해 의원은 외래 진료를 중심으로, 병원은 입원진료 중심으로 개편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명확한 기능 정립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환자들의 지나친 대형병원 선호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병원의 진료비를 인상하는 등의 여러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