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반테 페보 지음|김명주 옮김|부키|440쪽|1만8000원

지난달 10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50킬로미터 떨어진 동굴에서 1550여개 뼛조각이 발견됐다. 300만년 전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새 인류, ‘호모 날레디’다.

새로운 화석이 발견될 때마다 인류의 족보는 끊임없이 다시 쓰인다. 연구는 늘 현재 진행형이다. 저자 역시 인류의 족보를 다시 쓰고 있는 스웨덴 출신의 학자다.

전공이 특이하다. 일반인들로서는 이름조차 생소한 ‘분자생물학’. 유적지에서 직접 땅을 파고 화석을 발굴하는 대신, 그는 고대인의 뼛조각을 들고 멸균처리 된 실험실에 틀어박혀 연구한다. 그리고 과거의 퍼즐을 차근차근 맞춰 나간다.

저자가 고인류학계에서 이름을 높인 건 네안데르탈인 연구를 통해서다. 네안데르탈인은 13만년 전 등장해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경쟁하다 3만년 전 사라진 인류의 한 종이다. 그는 1996년 네안데르탈인의 뼛조각에서 DNA를 추출하고 해독했다.

여기서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의 조상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0년에는 네안데르탈인의 핵 게놈 해독을 통해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와 이종교배를 했고, 현대인에게 DNA 일부를 전달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고대 인류 연구에 매진하는 저자가 자신의 연구 과정을 종합적으로 돌아보고 정리한 책이다. 대학원생 시절 지도 교수 몰래 시작했던 별난 취미가 인류의 흔적을 되살리는 연구가 되기까지 그 과정을 손에 잡힐 듯 상세하게 담았다. 그 연구의 출발은 엉뚱하게도 송아지 간에서 시작됐다.

“1981년 여름, 연구실에 사람들이 별로 없을 때 슈퍼마켓에 가서 송아지 간 한 덩어리를 사 왔다.”

이 고깃덩이를 오븐에 넣고 실험실에서 몰래 부패시켜 만든 ‘송아지 간 미라'가 그의 첫 표본이었다. 바싹 마르고 딱딱해진 간에서 DNA를 추출하는 데 성공한 대학원생은 진짜 이집트 미라로, 그리고 네안데르탈인의 뼛조각으로 관심을 돌린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나 이집트 미라의 DNA를 연구하는 것보다 인간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 얼음 인간 이전에 유럽에 살았던 사람들인 네안데르탈인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책 속에는 시료로 쓰는 뼛조각 확보를 위한 신경전부터 ‘오염’을 제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실험실 풍경, 세계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싣기까지의 과정, 반박에 반박을 거듭하는 과학계 라이벌들의 논쟁과 그가 대처한 방법 등이 생생하게 담겼다. 현장에서 직접 겪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과정을 눈앞에 두고 보는 것처럼 그렸다.

연구 뿐만 아니라 저자를 둘러싼 삶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진솔하게 풀었다. 중립국인 스웨덴 출신 과학자가 통일 직후 뒤숭숭했던 독일에서 일하며 느꼈던 설움과 감격을 함께 엿볼 수 있다.

취약 분야인 인류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나라 밖 학자들을 끌어모으는 독일의 기초학문 투자에 관한 저자의 이야기도 주목할 만하다. 막스플랑크협회(Max Planck Society)가 세운 진화 인류학 연구소의 창립 멤버이기도 한 저자는 이렇게 썼다.

“선택된 사람들 모두가 독일 밖에서 왔다는 사실도 마음에 들었다. 독일에서 겨우 7년을 산 내가 이 연구소를 출범시키는 중책을 맡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독일인에 가까웠다. 장차 400명이 넘는 사람들을 고용하게 될 거대한 연구소를 나라 밖에서 온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맡길 정도로 국수주의적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나라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 밖에 자신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과학자인 수네 베르스트룀의 혼외 아들이라는 사실, 양성애자로서의 연애 경험,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 ‘사이언스'에 대한 비판 등 소소한 이야기까지 함께 담아 딱딱해질 수 있는 소재에 유머를 더했다.

연구 과정에 대한 기술이 깊고 상세하다 못해, 분자생물학이 생소한 일반인으로서는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그래도 고대 인류 연구 현장에 있는 과학자가 어떤 생각을 품고 뼛조각에 목숨을 걸며 일하고 있는지, 그 사명감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지금도 '우리는 누구인가'란 질문을 던지며 고대 인류를 연구하고 있다. 자신이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왜 모든 영장류 중에서 하필 현생인류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지구의 환경을 고의적 또는 비고의적으로 바꾸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질문일지도 모르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의 일부는 우리가 해독한 고대 게놈 속에 감추어져 있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