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공과대학 지음|지식노마드|559쪽|2만8000원

‘24 대 1’

지난 6일 오후. 가지타 다카아키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 소식에 일본 전역이 들썩거렸다. 전날 생리의학상에 이어 이틀 연속 수상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일본은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최초로 물리학상을 받은 이후 꾸준히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올해 2명을 포함하면 전체 24명, 이 중 과학 분야만 21명에 이른다.

반면 우리나라는 노벨 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2015년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11위, 수출규모 세계 6위라는 경제 수준을 감안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한국이 압축 성장에 몰두할 동안 일본은 꾸준히 기초과학에 투자해 명실상부한 과학 강국을 이룩했다.

단순히 노벨상을 받고 못 받는 데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이를 두고 선진국들과 선진국 문턱에 있는 한국 사이에 핵심적인 격차가 존재한다는 우려가 계속 나오고 있다.

그동안 성장의 기관차 역할을 했던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경제 성장률 둔화, 소비 위축 현상이 나타났다. 빠른 추격자 전략은 이제 효력을 잃은 상태다. 어느새 중국에 쫓기고 있는, 아니 어떤 분야는 자리를 내줘야 할 상황이다.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26명의 서울대 공대 교수들이 머리를 맞댔다. 외부 재정 지원 없이 2013년부터 1년 반에 걸쳐 한국 산업을 진단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물이 이 책이다.

저자들은 우리에게 ‘개념 설계’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주장한다. 창의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 역량을 말한다. 이것은 논문이나 교과서로 배울 수 없다. 오랜 기간 경험을 통해 축적된 무형의 지식과 노하우가 뒷받침돼야 한다. 개념 설계 역량에 따라 국가 간 산업경쟁력의 차이가 발생한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각 분야 전문 교수들과 1대 1 대담을 진행해 26개의 장(章)을 구성하고, ‘축적’이란 공통의 키워드를 뽑아냈다는 점을 높이 살 만하다. 전문 분야가 다른 저자들이지만,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인식,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공감대를 갖고 쓴 책이다.

다양한 산업 및 연구 현장의 사례를 만나 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기업이 스스로 역량을 축적하고 대학이 창의적 인재를 길러 내야 한다든가, 정부 정책 및 사회 인식의 변화를 통해 축적된 경험 지식을 확보하는 ‘축적 지향 사회’로 나가야 한다는 지적도 새겨들을 만하다.

다만, 559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은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반도체, 플랜트 엔지니어링 등 특정 분야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총론 격인 챕터 0을 읽고, 관련 대담을 발췌해 읽는 방법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