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 L. 베일리 지음|백준걸 옮김|앨피|388쪽|1만6000원

첫 번째 규칙, 여자가 먼저 신청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 남자가 주로 비용을 대야 한다. 세 번째, 남자가 여자를 집 앞까지 데려다줘야 한다. 현대 사회의 암묵적인 데이트 에티켓 3가지다.

물론 요즘은 여기에 대한 반론이나 이견이 없지 않다. 맘 편하게 더치페이(각자 지불)를 하는 커플도 있고, 경제력이 더 좋은 연상 여친이 연하 남친을 더 챙겨주는 일도 있다.

대체 데이트란 게 뭐기에. 이런 규칙들은 언제,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이 책 저자에 따르면 놀랍게도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위에서 말한 세 가지 관습을 똑같이 따르고 있다. ‘여자를 여자답게, 남자를 남자답게’. 이 원칙에 따른 에티켓은 언어와 문화를 막론하고 공통이다.

저자는 데이트를 ‘젊은 남녀가 집 밖에서 만나 사귀는 친밀한 사적 행위’라고 정의한다. 기원은 100년 전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미국의 하층민 거주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도시에는 수많은 빈민가가 생겨났고, 젊은 노동자들에게는 사랑을 속삭일 공간이 없었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탄생과 함께 우리의 연애도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남녀의 만남이 가정 방문과 부모님의 시선 아래 이루어졌던 이전 시기와는 달리 남녀가 만나려면 밖으로 나가야 했다. 당연히 비용이 들 수밖에. 사랑은 순수한 감정이었겠지만 데이트에는 돈이 따랐다.

일단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내는 것으로 합의됐다. 여자는 그 대가로 남자에게 성적 호의를 제공했다. 냉정하게 말하면 남자들은 데이트에서 돈으로 권력을 사고 여자는 실리를 취하는 구도가 형성됐다.

2013년 조사에 따르면, 더치페이가 만연한 미국에서도 남성의 84%가 데이트 비용을 낸다. 남성의 76%는 여성이 비용을 내겠다고 했을 때 부담을 느낀다고 한다. 데이트의 현실이다.

사적인 행위였던 데이트가 공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성격을 띠면서 남녀가 데이트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도 변했다. 이미 데이트는 사랑의 교감이 아닌 전시상품이 됐다. 데이트는 이제 남녀 모두에게 소비와 교환, 그리고 과시의 용도로 쓰인다.

저자는 데이트의 탄생과 역사를 통해 우리가 처한 사랑의 현실을 짚는다. 우리의 데이트는 그만큼 아름다운가? 혹시 사치와 과시, 폭력과 살인과 같은 단어들로 물들어 있진 않은가? 읽는 내내 반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