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장남인 신동주(61)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경영권 분쟁과 관련, 동생인 신동빈(60)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법적 대응에 착수했다. 8월 17일 일본롯데홀딩스 주총에서 완패한 뒤 52일 만이다. 이에 따라 롯데 경영권 분쟁은 양측이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이는 2라운드로 접어들 전망이다.

신 전 부회장은 8일 오전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 총괄회장의 위임을 받아 한·일 양국에서 2건의 소송과 1건의 가처분 신청을 냈다"고 말했다. 일본 법원에는 신 총괄회장의 롯데홀딩스 대표 해임에 대한 무효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는 신 전 부회장의 호텔롯데·롯데호텔부산 이사 해임에 대한 1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롯데쇼핑의 회계장부 열람 가처분 신청 등을 각각 냈다. 신 전 부회장 측은 "앞으로 계열사 전체(80개)에 대해 회계장부 열람을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즉각 원대 복귀와 관련자 사퇴"

신 전 부회장은 이날 오전 11시쯤 부인 조은주씨와 민유성 SDJ코퍼레이션 고문(전 산은지주 회장), 김수창(법무법인 양헌)·조문현(법무법인 두우) 변호사 등 3명의 법률 고문단을 대동하고 기자회견장에 입장했다. 올 7~8월 경영권 분쟁 때와 달리 옷깃에 롯데 배지는 달지 않았고, 자신의 이름 이니셜을 딴 SDJ코퍼레이션 회장이라는 직함을 사용했다. 신 전 부회장은 "발표문을 준비했으나 우리말이 부족해서 아내가 대독(代讀)하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발표문 아내가 대독 - 신동주(오른쪽)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8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생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고 있다. 한국말이 서툰 신 전 부회장 대신 부인 조은주(왼쪽)씨가 발표문을 읽었다.

그는 발표문에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깊이 사죄드린다"며 "동생인 신동빈은 지나친 욕심으로 아버지인 총괄회장의 롯데홀딩스 대표권과 회장직을 불법적으로 탈취했다"고 했다. 이어 "총괄회장은 친필 서명 위임장을 주면서 법적 조치 등을 포함한 일체의 행위를 위임했다"며 신 총괄회장의 서명과 지장(指章)이 찍힌 9월 24일 자 위임장을 공개했다. 그는 "목표는 총괄회장의 즉각적인 원대 복귀와 불법 결정을 한 임원들의 전원 사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1시간 기자회견 내내 직접 발언은 거의 하지 않고 질문에 대한 답변도 변호사들을 통해 했다. 이는 8월에 일본어로 발언했다가 여론의 비난을 받은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해임 절차 등 놓고 입장差

신 전 부회장 측은 이번 소송에서 신 총괄회장의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직과 자신의 한국 롯데 계열사 이사직 해임 등을 문제 삼았다. 대표직 해임을 위한 이사회 소집 사실을 신 총괄회장에게 알리지 않는 등 절차상 하자가 있고, 자신의 이사직 해임 이유도 부당하다는 것이다. 또 신 전 부회장이 가진 한·일 롯데그룹 지분이 신동빈 회장보다 많다는 점을 부각하면서 합법적인 후계자임을 주장했다.

신 전 부회장 측은 "경제적 가치로 볼 때 신 전 부회장의 일본롯데홀딩스 지분은 36.6%에 달한다"며 "경제적 이익이 더 큰 사람을 일방적으로 이사직에서 해임한 것은 부당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 "총괄회장이 장남에게 광윤사(光潤社) 지분 50%를 차지하게 한 것은 장남이 경영을 이어가라는 뜻"이라고 했다.

실제로 일본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인 광윤사에서 신 전 부회장 지분(50%)은 신동빈 회장(38.8%)보다 많다. 일본롯데홀딩스는 한·일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있는 지주회사다. 일본 롯데 계열사 지분도 신 전 부회장 측이 약간 우세하다. 하지만, 신 전 부회장 측이 소송에서 이겨도 신동빈 회장의 경영권을 흔들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롯데그룹은 "일본롯데홀딩스 지분의 3분의 2 정도를 보유한 종업원 지주회와 일본 롯데 계열사들이 신 회장을 확고히 지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신 전 부회장 측의 소송이 형제간 한·일 롯데그룹 분할 등을 노린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롯데 관계자는 "'롯데는 한국과 일본이 단일 그룹으로 경영돼야 한다'는 게 신동빈 회장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경영권 흔들리지 않을 것"

롯데그룹은 이날 "경영권 분쟁 논란이 정리되는 시점에 또 다른 걱정을 끼쳐드려 안타깝다. 모든 활동을 법적으로 검증한 뒤 실시했기 때문에 롯데 경영권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해임 절차에 대해서도 "이사회와 주주총회에서 결정한 것으로 문제가 없다"고 했다. 신 전 부회장 측이 제시한 신 총괄회장의 위임장과 관련해서는 "고령으로 기억력이나 판단력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진실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롯데그룹은 법무법인 김앤장과 율촌 등을 통해 소송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롯데 관계자는 "8일 낮 귀국한 신동빈 회장은 오늘 기자회견 사실을 보고받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