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안시하(33)를 만난 순간 옛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에 나오는 여성 검객 오스칼을 보는 것 같았다. 물결 같은 머릿결, 짙은 눈썹과 뚜렷한 이목구비가 강렬한 인상을 자아냈다.

그런데 신데렐라라고? 그랬다. 여전히 무명에 가까웠던 3년 전 일약 '아이다'의 주연으로 발탁돼 '뮤지컬계의 신데렐라'로 불렸던 그녀는 신작 라이선스 뮤지컬 '신데렐라'(오스카 해머스타인 작, 왕용범 연출)에서 진취적이고 현대적인 새 모습의 신데렐라를 보여주고 있다. 계모의 구박에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꿈을 이야기하며, 뒤쫓아오는 왕자 앞에선 일부러 유리 구두를 벗어놓고 간다. "운명을 이겨내고 행복을 찾는 스토리가 정말 마음에 들어 꼭 출연하고 싶었어요."

오랜 무명 생활 끝에 서른 살 넘어 뮤지컬 주연급으로 도약한 안시하는 “절 보고 용기를 얻는 후배들을 보면 늘 연습을 게을리할 수 없다”고 했다.

자칫하면 '왕자를 꾀는 꽃뱀으로 보일 수 있다'는 생각에 연기 고민을 많이 했다. "해법은 '진심을 담자'는 거였습니다. 주인공이 정말 착한 마음에서 왕자가 찾아오길 바란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그건 성공이었다. 그래도 참 힘든 뮤지컬이다. "무대에 나오지 않는 장면이 거의 없어요. 혼자서 부르는 노래만 14곡이고요. 게다가 춤도 얼마나 오래 추는지…."

하지만 가장 가슴을 졸이는 건 1막과 2막에 한 번씩 나오는 변신 장면이다. 불이 꺼지고 연기가 피어오르면 신데렐라의 옷은 순식간에 누더기에서 화려한 드레스로 마술처럼 바뀐다. "아침저녁으로 수백 번 변복(變服) 연습을 했어요. 아직도 그 장면이 다가오면 가슴이 조마조마해지지만요."

어릴 적 노래를 잘 불러 동네에서 '예산의 주현미'로 불리던 충청도 소녀 안시하는 대입에 실패하고 무작정 상경한 뒤 천호동 반지하 셋방에서 TV에 섬광처럼 스쳐가는 '뮤지컬 아카데미 수강생 모집'이란 자막을 보고 인생이 바뀌었다. "뮤지컬이 뭔지도 몰랐는데,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는 거더라고요. 서광이 비치는 것 같았어요."

2004년 '달고나'로 데뷔했으나 10년 가까이 앙상블(뮤지컬 조연 배우)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만둘까 고민하던 중 '아이다' 오디션에서 지원자 상대역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덜컥 주연인 암네리스 역을 맡게 됐다. 이후 '조로' '황태자 루돌프' '체스'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신데렐라'에 이어 곧바로 나오는 '프랑켄슈타인' 연습 때문에 계속 충무아트홀에 출근하다시피 한다. "'신데렐라' 커튼콜 때 보면 어른 관객들이 손을 격렬하게 흔들고 환호를 하세요. 순수했던 어릴 때 꿈을 돌이키게 해주는 작품이라 그럴 겁니다."

▷뮤지컬 '신데렐라' 11월 8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 (02)764-785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