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부터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입국 당일 선불 휴대폰을 개통해 쓸 수 있다는 기사를 분명히 읽었는데, 정작 대리점에서는 3일 후에 다시 오라고 했어요. 미국인 친구 앞에서 망신만 당했습니다.”

직장인 정상현씨는 지난 2일 한국을 방문한 미국인 친구와 서울 명동 나들이를 갔다가 불쾌한 경험을 했다. 이날 정씨는 미국인 친구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사용할 선불 휴대폰을 개통하기 위해 이동통신 대리점을 찾았다. 하지만 대리점 직원은 “외국인은 실명(實名) 확인에 며칠이 걸려 입국 당일 개통이 불가능하다”면서 “3일 후 다시 오라”고 말했다.

당황한 정씨는 미국인 지인을 데리고 이동통신 대리점 4곳을 더 방문했다. 하지만 나머지 대리점도 “입국한 날 개통할 수 없으니 3일 후에 오라”고 안내했다. 결국 정씨의 미국인 친구는 고가의 로밍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선불 휴대폰은 유심(USIM·가입자 식별 장치) 카드를 구매해 자신의 휴대전화기에 꽂아 쓰는 이동통신 상품이다. 사용료가 비싼 로밍 서비스나 통신사의 임대폰에 부담을 느끼는 외국인 여행객들이 선호한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법무부가 이달 1일부터 ‘실시간 외국인 실명인증 서비스’를 시행함에 따라 외국인 관광객들은 입국 당일 선불 휴대폰을 개통해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실제 이동통신 대리점에선 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제도가 바뀐 것을 상당수 통신 대리점 직원들이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동통신 업체들은 “정부가 서비스 시행 하루 전인 9월 30일에 갑자기 발표를 하는 바람에 일선 대리점에 공지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동통신 회사 입장에선 매출 비중이 낮은 선불 휴대폰 서비스를 대리점에 적극적으로 알릴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가만히 두면 외국인들은 고가의 로밍 서비스나 임대폰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제도만 마련해 발표하고 현장 점검을 게을리 한 점도 외국인 관광객의 선불 휴대폰 개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요인으로 꼽힌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방문객은 총 1420만명에 이른다. 정부와 이동통신사의 ‘나 몰라’식 태도에 입국하자마자 통신 대리점을 찾는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방문 첫날부터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될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