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 오릭스가 현대증권 되팔 때 우선매수권·콜옵션
금융당국, 오릭스 대주주 적격성 심사중…현대그룹의 파킹딜 매각 논란 지속

현대증권 인수를 추진 중인 일본 오릭스가 향후 현대증권 지분을 매각할 경우 현대그룹에 우선매수권을 주기로 한 가운데 현대증권 지분을 되사오는 주체는 현대그룹 주력사인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 오릭스가 현대증권 인수 후 4년이 지난 시점에도 매각을 추진하지 않을 경우엔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가 콜옵션(조기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현재 금융당국은 오릭스의 현대증권지분 인수에 대해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하고 있다. 이 안건은 이달 14일 열리는 증권선물위원회에 상정된다. 금융위원회는 21일 오릭스의 현대증권 인수 승인 여부를 확정지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썬 승인 가능성이 크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그룹과 오릭스는 오릭스 특수목적회사(SPC) 버팔로파이낸스가 현대그룹 계열사로부터 사들인 현대증권 지분 22.56%를 되팔 경우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에 우선매수권을 주기로 계약했다.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는 버팔로파이낸스가 현대증권 인수 3년부터 4년사이에 매각을 추진할 경우 1년간 우선매수권을 청구할 수 있다. 또 인수 이후 4년간 버팔로파이낸스가 매각을 추진하지 않을 경우엔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가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우선매수청구 및 콜옵션 조건은 현대증권 주가가 1만9000원 미만일 경우 직전 분기 연결재무제표상 1주당 순자산가치에 0.89를 곱한 금액과 연 복리 15%를 충족하는 1주당 금액 중 큰 금액이다.

계약서에는 ‘우선매수청구권 등의 행사시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는 연 복리 15%의 수익에 부족한 금액을 투자자들에게 지급할 의무(신용보강의무)를 부담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처럼 우선매수자로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가 기재돼 있지만 금융권에선 현대엘리베이터를 실제 매수 주체로 보고 있다.

현재 내국 법인이 금융회사 주요주주가 되려면 부채비율이 300% 이하여야 하는데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지난해말 기준 960%에 이른다. 또 현대상선은 해운업 장기 침체 여파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다. 우선매수권 행사 가능성이 있는 3~4년 안에 인수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할 수 없는 상태다.

반면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말 기준 부채비율이 190% 가량이고, 영업이익이 나고 있어 부담이 덜 하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1338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현대그룹의 한 관계자는 “현대상선의 경우 금융회사를 매수하기 어려운 상태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우선매수청구 조건과 관련해 현대엘리베이터에 과도한 짐을 짊어지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릭스는 주당 1만2200원에 현대증권 주식을 매수했다. 주당 1만2200원에 연복리 15%의 조건이면 3년 후 매각가는 1만8000원대다. 반면 현재 현대증권 주가는 7000원선이다. 3년 안에 현대증권 기업가치가 획기적으로 나아지지 않는 이상 현대엘리베이터는 고가 매수가 불가피한 셈이다.

현대그룹 입장에서는 오릭스가 보유한 22.56% 외에 현대증권 2대주주인 사모펀드(PEF) 자베즈의 보유 지분을 동반 매수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현재 자베즈는 9.54%의 현대증권 지분을 동반 매각할 수 있는 권리(태그얼롱·tag along)가 있다. 이 지분까지 매수한다고 가정하면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상선은 1조4000억원 안팎의 인수자금을 대야 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사모펀드는 경영을 잘 못 할 경우 손실을 볼 가능성도 있는 것인데 이렇게 세세히 우선매수청구권과 콜옵션 조건을 부여한 딜은 처음 봤다”면서 “양측이 수년 후의 매매 조건까지 정해놓으면서 그나마 현금 흐름이 나은 현대엘리베이터가 총대를 메게 됐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일련의 조항들을 봤을 때 현대증권 매각은 현대그룹의 파킹딜(Parking Deal·지분을 잠시 맡기는 형태의 딜)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달 15일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현대그룹이 연 15%의 이자를 내고 현대증권을 잠시 맡기는 파킹딜”이라며 “금감원은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넥스젠캐피탈, 나티시스, 케이프포춘, 농협은행 등 현대상선 재무적투자자(FI)들과 파생상품계약(TRS)을 맺은 바 있다. 이들 FI는 우호적 투자자로 활동하는 대신 연 5~8%의 고정수익을 보장받고 지분투자에 나섰던 것이다. 이 때문에 현대엘리베이터의 최근 수년간 순이익은 영업이익에 비해 적었다. 특히 2013년엔 영업이익이 986억원이었으나 순이익은 26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올해초 넥스젠캐피탈, 나티시스 등 FI들과 현대상선 지분과 관련한 TRS를 대부분 해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