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본 등 12개 나라가 참여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Trans-Pacific Partnership)이 전격적으로 타결되면서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 단일무역지대에서 낙오자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국가가 우리보다 적었던 일본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관세 불이익을 받아왔으나 이번 TPP 타결로 미국, 캐나다, 베트남 등 주요 시장에서 우리나라 업체와 거의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게 됐다.

또 누적 원산지(물건의 생산지) 규정에 따라 한국의 자동차 부품 업체 등이 TPP 회원국에 수출하는 것도 일본 업체에 비해 불리해지게 됐다. 누적 원산지 규정은 역내에서 원산지 지위를 획득한 재료를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해야 특혜 관세를 적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TPP 회원국은 역내 국가의 재료를 많이 쓸 가능성이 커진다. 이 때문에 자동차 업계는 TPP 타결 시 완성차 및 부품의 수출이 줄어들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이처럼 교역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도 정부는 TPP에 참여할지를 놓고 2013년초부터 지금까지 2년 넘게 검토만 하고 있다.

정부는 TPP 참여가 늦어진 것은 정책적 판단의 결과이지 실기(失期)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TPP 협상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그때는 한미 FTA 비준과 다른 FTA에 집중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고 일본이 참여를 선언했을 때는 12개 나라가 협상을 상당히 진전한 상황이어서 1차 타결되면 가입 여부를 결정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의 설명대로 TPP 논의가 처음 시작됐던 2008~2009년에는 우리나라가 TPP에 참여할 실익이 적었다. 당시엔 TPP 협상을 진행 중이던 다른 나라와 이미 FTA 협정을 맺었거나 추진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3년 3월 15일 일본이 TPP 협상 참여를 공식 선언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당시 한국경제연구원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 연구기관들은 TPP 참여 시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발효 후 10년간 2.5~2.6% 증가한다며 늦게라도 참여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잇따라 발표했다. 정부는 일본이 참여를 공식 선언한 지 6개월 뒤인 2013년 11월 29일에야 뒤늦게 TPP 참여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이번엔 미국과 일본이 가입을 꺼렸다. 한국이 새로 들어오면 회원국 간 역학 관계가 복잡해져 지금까지의 논의가 무산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TPP가 타결되자 정부는 이제부터 협정문 내용 검토, 공청회 개최 등 절차를 거쳐 공식적으로 참여할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아무리 빨라도 2017년 이후에나 추가 가입 협상이 진행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렇게 되면 실제 가입 시기는 더 늦어진다. 그 사이 우리와 많은 부분에서 경쟁하는 일본은 한국이 그동안 누려왔던 특혜 이익을 하나씩 잠식해갈 것이다. TPP 참여가 늦어진 게 실기가 아니라는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검토해왔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