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얻은 과실을 사원도 나눠 갖게 하는 우리사주제도의 인기에 제동을 거는 학술 논문이 나왔다. 최근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미국경영학회(Academy of Management, AOM)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자발적인 자사주 투자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Unintended Consequences of Voluntary Company Stock Investment)’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이 논문은 벤저민 B 던포드 퍼듀대 교수와 디드라 J 슐라이처 텍사스 A&M대 교수, 리앙 저 피츠버그대 교수, 강성춘 서울대 교수가 공동 작성해 제출했다. 저자들은 논문에서 노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제도로 각광받아온 우리사주제도가 예상치 않은 부작용을 노사 양측에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내가 투자한 회사’ 위해 더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 만드는 우리사주제

회사 직원에게 자사 주식을 사서 가질 수 있게 하는 우리사주제도(Employee Stock Ownership Plan, ESOP)는 영미권에서 일반화된 노동 복지 혜택 중 하나로 꼽힌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자사주를 갖고 있는 근로자 수는 3200만명에 달한다.

우리사주제도는 1956년 미국의 경제학자 루이스 켈소(Louis Kelso)가 처음 주창했다. 기업 및 금융 전문 변호사이기도 했던 켈소는 당시 미국의 경제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 제도를 고안했다.

그는 노동자가 회사의 주주가 되면 우리주 가치 상승에 따른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회사와 노동자 양쪽에 다 이득이 된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이 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최근에는 정부도 적극 나섰다. 지난 8월 기획재정부는 중소기업의 우리사주조합 활성화 계획을 발표했다. 회사 직원이 자사주를 장기 보유할 때 세제 혜택을 확대한다는 내용의 세법 개정안이었다.

앞서 7월에는 고용노동부도 비상장법인의 우리사주제도 도입을 촉진하기 근로복지기본법 및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일정 요건을 갖춘 비상장기업에 한해 조합원이 회사측에 일정 요건을 갖춘 우리사주를 되사줄 것을 요청할 수 있는 ‘비상장법인 우리사주 환매수 제도’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동안 경영학계의 통설도 주로 우리사주제도의 장점을 부각시켜왔다. 자사주에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한 직원일수록 회사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대한 기여도도 높다는 연구 결과가 많았다. 자신의 자산 가치가 회사의 실적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한다는 설명이 따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통념에 제동을 거는 연구 결과가 제출되고 있다. 우리사주제도가 오히려 직원의 안일과 태만의 원인이 되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

지난 8월 밴쿠버에서 열린 AOM 연례 학술대회에서 주목받은 ‘자발적인 자사주 투자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는 논문도 그 중 하나다.

올해 열린 미국경영학회 연례 학술대회 로고

1936년에 창설된 AOM은 세계 114개국 2만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경영학계 최대 규모의 학회다. 올해 연례 학술대회는 지난 8월 7일부터 11일까지 나흘 동안 열렸다. 총 1만1000여명의 학자와 경영학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경영 전략, 조직행동, 기업 지배구조, 인적 자원 관리 등 다양한 주제로 발표와 토론을 벌였다.

문제의 논문은 학회가 끝난 뒤 이코노미스트 등 유력 매체에 소개되면서 학계 안팎에서 화제가 됐다.

◆ "자사주 많이 산 근로자, 회사에 '더 많은 것' 기대...생산성 악영향"

논문은 근로자들이 자발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한 후에 회사에 대해 갖는 태도 변화를 집중 조명했다. 이를 위해 409명의 상업 부동산회사 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이 중 18%는 관리자 직급에 해당하는 직원이었다.

설문대상자들은 미국의 퇴직연금법인 401k 제도에 따라 회사로부터 받는 연금 전체 금액 가운데 평균 44% 정도를 자사주에 투자하는 사람들이었다.

연구진은 이들에게 근로자가 회사를 위해 얼마나 기여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 4개항과 회사는 자사주에 투자한 근로자에게 어떤 의무를 가지는지 묻는 질문 7개항을 제시하고 답변을 분석했다.

그 결과, 자사주에 투자한 돈이 많은 직원일수록 회사 실적에 기여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이들은 회사로부터 더 많은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승진이나 직업 훈련, 경력 개발, 직업 안정성과 높은 급여 보장 등 여러 측면에서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답했다. 또한 이들은 일반 근로자에 비해 휴가도 더 많이 쓰려는 경향을 보였다. 요컨데 자사주에 많이 투자한 직원일수록 그만큼 회사로부터 보상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논문 저자들은 이런 결과를 토대로 "자사주 투자는 근로자로 하여금 회사가 충족시키지 못할 정도의 높은 기대를 품게 할 수 있다"면서 "고용주가 근로자들의 이런 기대를 채워주지 못할 경우, 근로자는 이를 '심리적 계약 위반'으로 인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결과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신뢰는 줄고, 직장에 계속 머무르려는 의지도 약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 따랐다.

논문에 따르면 자발적으로 자사주에 투자한 근로자는 기본 휴가일수보다 더 많은 휴가를 원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논문은 자발적으로 자사주에 투자한 근로자들의 과도한 휴가 사용 성향도 회사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본래 휴가는 근로자의 탈진(burnout)을 방지하기 위해 적정 시점에 잠시 일에서 벗어남으로써 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그러나 논문 저자들은 "자발적으로 자사주에 투자한 근로자는 기본 휴가일 수보다 더 많은 휴가를 원하거나 적절치 않은 시점에 휴가를 떠나려는 경향을 보였다"며 "이 경우 회사의 생산성과 효율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다. 나아가 "자사주 투자 여부가 근로자의 휴가에 대한 의지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사주제도 도입 때 예상치 못했던 결과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고 썼다.

◆ 자사주 ‘몰빵투자’했다가 노후 자금 날린다… 위험 경고해야

논문은 근로자의 자사주 투자가 본인의 투자 측면에서도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 근거로 2001년 12월 벌어진 엔론 파산 사태 사례를 들었다. 당시 엔론 직원들은 연금자산의 평균 62%씩을 회사 주식으로 갖고 있었고, 결국 회사가 파산한 뒤 큰 피해를 입었다.

짧은 기간 고속성장했지만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나 순식간에 무너진 엔론의 주가변동

저자들은 “(이런 위험을 감안하면) 고용주가 미리 근로자가 노후자금을 자사주에 ‘몰빵’ 투자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노후 대비 자금을 자사주에만 몰아서 투자할 경우, 주가 등락에 따라 근로자가 지게 될 부담이 지나치게 커진다는 이유에서다.

연구진은 기업이 사전에 근로자에게 분산투자의 장점을 철저히 교육시켜 연금을 자사주 이외에 다른 투자에도 눈을 돌릴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