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로 유입되는 이주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의견이 있다. 이민을 피할 수 없다면 ’좋은 이민자’를 골라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이민자’란 우리나라에 도움을 주되 부담을 안기지 않는 외국인을 말한다.

1884년 한국 땅을 밟은 호러스 언더우드 선교사와 그의 가족들이 ‘좋은 이민자’의 표본이다. 언더우드 가문은 배재학당, 연세대, 새문안교회 등 한국의 중추적인 교육·종교 기관을 설립했으며, 4대에 걸쳐 한국 사회를 위해 일하다가 이 땅에서 생을 마감하거나 은퇴 후 조용히 미국으로 돌아갔다.

오늘날의 ‘좋은 이민자’란 전문직을 가진 외국인을 일컫는다. 그들은 한국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높은 수익을 올리기 때문에 우리 정부에 복지 지원을 요청하지 않으며, 체류 기간이 끝나면 본국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좋은 이민자’와 대비되는 ‘나쁜 이민자’에는 저숙련 외국인 노동자가 위치하고 있다. 이들이 한국에 유입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한국이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할 분야에서 벌어들인 소득의 대부분을 자국으로 보내면서 ‘부당한’ 복지 혜택을 누리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나쁜 이민자’는 한국 경제에 기여하지 않으면서 복지 부담만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좋은 이민자’를 추구하는 것이 과연 '좋은 이민정책’인지는 의문이다. ‘좋은 이민자’만을 받아들이기에는 우리 이민시장의 현실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에 오고 싶어 하는 외국인의 대다수가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저숙련 노동자다. 저숙련 노동자를 배제하고 ‘좋은 이민자’만을 고집하는 이민정책은 사실상 이민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전문가들은 ‘나쁜 이민자’에 대한 관념이 실제와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경제학 연구는 시장을 통해 유입된 이민자는 숙련/비숙련 여부와 관계없이 노동 인력을 증가시킴으로써 거주국의 경제 성장에 기여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저숙련 노동자에 의존한 유럽의 이민정책이 실패했다는 일각의 주장은 이민의 효과는 외면한 채 비용만 부각시키는 편협한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포괄적으로 볼 때, 유럽은 이민을 통해 얻은 편익이 비용보다 훨씬 컸다. 유럽이 이민자를 통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럽이 경제적 부를 향유하는 선진국이 된 배경에 이민자들의 노동력이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이제 ‘좋은 이민자’와 ‘나쁜 이민자’에 대한 인식을 달리해야 한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숙련된 전문직 이민자만을 선호하는 정책은 국가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벽일지도 모른다. 이민자와 내국인 간의 사회적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는 유럽을 돌아볼 때, 한국의 이민정책은 한국 사회에 동화할 수 있는 외국인을 유치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체류기간이 끝나면 본국으로 돌아가는 외국인을 선호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마음 한편으로는 한국이 좋아 정착하는 외국인을 보면서 뿌듯해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출신국 문화와 한국 문화의 친화도는 이민자의 정착 여부에 크게 작용한다. 국제 학생을 오랫동안 가르쳐온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몽골, 베트남 등 한국과 문화적으로 가까운 나라의 유학생이 한국에 우호적이고 적응력도 높았다. 오랜 기간 해외 사업을 추진했던 김우중 전 대우 회장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 3개국을 한국에 가장 우호적인 국가로 꼽고 현지에서 이들 국가의 인재를 육성하고 있다.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의 정주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한국어 습득 노력이다. 흥미로운 점은 전통적 기준에서 ‘좋은 이민자’인 영어권 선진국 출신 외국인보다 ‘나쁜 이민자’들의 한국어 습득 의지와 구사력이 더 뛰어나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영어권 국가 출신 외국인은 한국어를 배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제한적이나마 영어가 통하기 때문에 굳이 한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그들이 한국 사회에 동화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데 있다.

저숙련 이주노동자 중심으로 형성된 안산의 다문화 거리. 다문화 사업을 창업하는 이들 이주노동자에게서 전문직 외국인사회에서는 보기 힘든 한국 정주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정주 의사의 차이는 이민자들이 사는 공간에서도 드러난다. 거제에 거주하는 4000여 명의 해외 선주회사 감독관들은 한국에 단기 거주하는 전문직 인력으로, 전형적인 ‘좋은 이민자’에 속한다. 그러나 이들은 양식당, 바, 요트장, 외국인 학교 등 내국인과 격리된 시설을 중심으로 생활한다. 이는 주로 저숙련 노동자들로 구성된 안산의 외국인 사회와 대비된다. 안산에는 외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가게와 한국 가게가 공존하는 다문화 상권이 조성되어 있다. 잘 꾸며진 거제의 외국인 단지보다는 한국 사회와 융화된 안산의 거리 풍경에서 한국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이민자의 의지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거제의 격리성과 안산의 통합성은 '좋은 이민자'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돌아보게 한다. 한국과 동떨어진 생활을 한 후 모국으로 돌아가는 거제의 외국인보다는 다문화 상권에서 창업을 한 안산의 외국인이 한국 사회의 발전에 동참할 가능성이 더욱 크지 않을까. 문득 '좋은 이민자'도 '나쁜 이민자'도 없다는 외국 친구의 충고가 떠오른다. 이민자의 좋고 나쁨을 가리기 전에 이들을 모두 포용하고 이들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밑그림을 그리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