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무책임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포스코 그룹 계열사인 포스코플랜텍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확정된 9월 30일, 채권은행 관계자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그를 화나게 만든 것은 “포스코플랜텍을 포스코 그룹 연결 재무제표 기업에서 제외하겠다”는 포스코의 입장 발표였다.

포스코는 “포스코플랜텍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 채권단이 회사 경영을 책임지고, 포스코 본사의 실질적 지배력은 사라지므로 포스코플랜텍을 포스코 그룹 연결 재무제표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일반적인 기업의 워크아웃이라면 포스코의 발표는 타당하다. 채권단 주도로 워크아웃을 추진하는 기업의 대주주는 보유 지분 감자(減資)에 동의하고, 은행들이 보유한 채권을 지분으로 맞바꾸는 방식으로 회사의 자본을 보강한다. 빚을 회사 지분으로 교체하는 대신 기존 대주주는 소액 주주로 내려앉고, 채권은행이 대주주 지위에 오른다. ‘워크아웃 기업의 지배권은 채권단이 갖는다’는 말은 이런 구조에서 성립된다.

하지만 포스코플랜텍의 워크아웃은 이런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대주주 증자(또는 감자)-채권단 출자전환’으로 이어지는 워크아웃 룰을 적용하고 싶었지만, 포스코는 이를 거부했다. 채권은행은 출자 전환을 하지 못했고, 자본보강 기회를 잃어버린 포스코플랜텍은 자본 잠식 상태에서 뒤늦게 구조조정 수술대에 올랐다. 포스코는 내부 일감을 몰아줘서 경영 정상화를 돕겠다고 하지만, 이것으로 기존 차입금의 이자비용이나 지불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워크아웃 도중에 유동성 위기가 재발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채권은행단이 포스코플랜텍을 그룹 연결 재무제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포스코의 발표에 분통을 터트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부채 7000억원, 올해 상반기 영업적자 600억원인 포스코플랜텍을 그룹 연결 재무제표에서 제외하면 포스코 그룹은 재무구조가 개선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본질은 변하지 않았는데 겉모양만 그럴 듯하게 만드는 ‘꼼수’다.

포스코플랜텍의 워크아웃이 시작되므로 포스코 본사가 지배력을 상실했다는 포스코의 주장도 납득하기 어렵다. 포스코가 여전히 포스코플랜텍 지분 70%를 갖고 있는 대주주이기 때문이다. 채권단이 경영 관리를 한다지만, 포스코플랜텍 경영진은 포스코가 임명한 사람들이다. 워크아웃에도 불구하고 포스코플랜텍에 대한 포스코의 지배력은 살아있는 것이다.

포스코 안팎에서는 구조조정을 이끄는 가치경영실 등에 소속된 재무통(通) 임원들이 이런 결정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오준 회장의 구조조정 성과를 돋보이도록 치장하기 위해 꼼수를 동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무제표에 나오는 수치가 좋아진다고 해서 회사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회사의 가치는 과거의 명성과 현재의 평판, 미래 전망의 총합이다. 꼼수로 비춰지는 행동은 회사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권오준 회장을 비롯한 포스코 경영진은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편법 대신 투명경영과 정도경영으로 망가진 회사를 재건하는데 나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