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경절 연휴가 시작된 1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8층 가전(家電)제품 매장은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광둥성 광저우에서 5박 6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가오위(高與·27)씨는 스마트폰 화면에 저장한 정보를 들여다보며 전기밥솥을 고르고 있었다. 매장 직원에게 '압력 지수(指數)'까지 꼼꼼히 물어가며 29만8000원짜리 제품을 구입한 가오씨는 "홍콩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비슷한 한국 제품이 5980홍콩달러(약 90만원)인데 훨씬 싸게 샀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한글 안내문이 붙어 있는 진짜 한국 밥솥을 사고 싶었다"며 "나처럼 '리얼(Real) 코리아' 제품을 찾는 사람이 꽤 많다"고 말했다.

'알뜰 쇼핑'으로 바뀐 中관광객

국경절 연휴(10월 1~7일) 동안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예전과 확 달라져 똑똑한 소비를 하는 20~30대 '스마트 유커(遊客)'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온라인·모바일 기기를 활용해 얻은 최신 정보로 무장한 '꼼꼼·알뜰 쇼핑 리스트족(族)'이 대표적이다.

1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화장품 매장을 찾은 중국인이 스마트폰에 저장한 구매 물품 목록(目錄)을 확인하고 있다. 옆에 있는 중국인 관광객들은 스마트폰과 계산기를 손에 쥐고 할인 정보와 가격 등을 비교하고 있다.

이날 명동에서 만난 우샤(22)씨의 메모장에는 한국 관광 후기(後記) 사이트와 블로그 등에서 수집한 화장품·의류 등의 최저 가격과 구입 장소 정보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지린성 창춘에서 온 회사원 녜링쥔(聶凌駿·25)씨는 "인터넷 검색 정보를 이용해 한국 인기 화장품을 중국 백화점 가격의 절반에 샀다"고 말했다.

세일과 경품 행사를 100% 활용하는 '이벤트 마니아족(族)'도 새로운 흐름이다.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는 개장을 기다리는 중국인 관광객 수십명이 휴대전화를 흔들고 있었다. 중국판 카카오톡인 '웨이신(微信)'을 이용한 이벤트에 응모하려는 고객들이다. 주최 측은 당첨자 8888명에게 휴대전화와 여행용 캐리어 등 경품을 주는 행사를 마련했다.

서영충 한국관광공사 중국팀장은 "그동안 명품 구매에 집중됐던 중국인 관광객의 쇼핑 행태가 최근 한국 브랜드를 검색해 직접 구매하는 실용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싹쓸이 쇼핑'이 사라지고 가격을 꼼꼼히 비교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방한 중국인 관광객의 1인당 지출액도 감소 추세다. 2010년 1606달러에서 2013년 2271달러까지 치솟았다가 지난해 2094달러로 하락했는데 올해는 더 떨어질 전망이다.

장병권 호원대 교수(호텔관광학부)는 "중국 관광객들이 필수(必須) 관광지를 무조건 둘러보던 '터치 앤드 고(touch-and-go)' 방식의 여행 패턴에서 벗어나 자유·독립여행 형태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실속 쇼핑과 먹거리·뒷골목 투어 등으로 한국의 독특한 경험을 즐기는 이들의 한국 재(再)방문 비율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無料 와이파이존 확대 등 필요"

달라진 중국인들의 쇼핑 흐름에 맞춰 국내 유통기업들도 다양한 새 전략을 내놓고 있다. GS홈쇼핑은 국경절 연휴를 앞두고 방한 중국인 전용 애플리케이션인 '한하유(韓哈遊)'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앱은 국내 여행 정보와 홈쇼핑 히트 상품 등을 모아놓은 것으로, 주문한 물건을 서울 시내 호텔과 게스트하우스 등 400여곳에 배달해 준다. 우리나라 온라인 쇼핑몰에서 상품을 직접 구매하는 역직구(逆直購) 수요를 겨냥해 중국어 온라인 사이트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현대H몰이 올해 8월 시작한 중국어 모바일 앱은 두 달 만에 누적 다운로드 수 1만건을 돌파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의 하루 평균 모바일·인터넷 접속 시간이 215분으로 미국의 1.7배, 일본의 2.2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1980년대에 태어난 바링허우(八零後)와 1990년대생인 주링허우(九零後) 등 구매력이 높은 젊은 세대, 여성 관광객을 겨냥해 국내에 무료 와이파이존을 확대하고 테마형 모바일 관광·상품 앱이나 웹 매거진 등을 적극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