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 출범 직후인 지난 2013년 5월, 정부의 ‘싱크탱크’라고 불리는 국가미래연구원 김광두 원장은 ‘좀비기업’ 양산을 우려했다.

당시 김 원장은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금융투자업계 최고경영자 간담회에 참석해 “시장에서 기술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내실이 튼튼하지 못한 벤처기업에 자금이 흘러들어가 좀비기업을 만들 수 있다”며 “이는 배수구가 막힌 저수지에 물을 붓는 것과 다름 없다”고 말했다.

벤처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 자금에 의존해 연명하는 회사들을 ‘좀비 벤처’라고 부른다. 좀비처럼 죽지도, 부활하지도 않고 명만 이어간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정부 지원금의 비효율적인 운용은 결국 좀비벤처를 낳아 국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는 좀비벤처들에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겨우 연명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산업 생태계 전체가 경쟁력을 잃고 도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좀비기업 자산비중 낮추면 정상기업 고용 11만명 증가”

정대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좀비 기업이 벤처·중소기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 발표했다.

정 연구위원이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전체 기업 자산 대비 이들 ‘좀비 기업’의 자산 비중은 15.6%였다. 3년 전인 2010년(13%)과 비교해 2.6%포인트 높은 수준이었다.

부실 기업들은 기술보증기금이나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보증을 거절당하고도 재심사를 요청, 자금 지원을 받으며 수명을 연장했다. 금융 지원은 주로 만기 연장과 이자 보조를 통해 이뤄졌다.

좀비기업의 자산 비중과 정상 기업의 고용증가율, 투자율 간 상관관계

정 연구위원은 자력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이들 기업의 자산 비중이 10%포인트 높아질수록 정상 기업의 고용 증가율과 투자율은 각각 0.53%포인트, 0.18%포인트씩 떨어진다고 밝혔다. 만약 좀비기업의 자산 비중을 5.6%로 현재보다 10%포인트 낮춘다면 정상 기업의 고용을 11만명 이상 늘릴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정 연구위원은 1990년대 초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부실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 사례도 언급했다. 당시 일본의 은행들은 정상 기업에 대한 여신은 축소한 반면 부실 기업에 대해서는 대출 기간 연장 및 이자 면제 등을 통해 자금을 추가 지원했는데, 이에 따라 전체 기업 중 부실 기업의 비중은 4~6%대에서 1990년대 후반 14%까지 급등했으며 정상 기업의 고용 및 투자도 위축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그는 “생산성이 낮거나 기술력이 떨어지는 기업은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시장에서 나가야 하는데, 정부가 지원해주고 은행에서 대출을 연장해주며 연명시키니 새로운 기업이 진입할 수 있는 길이 막힐 수밖에 없다”며 “금융당국은 한계기업 선별 기준을 강화하고 벤처캐피털과 사모투자펀드 시장을 활성화해 한계기업 정리를 촉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 “취업 못해 정부 돈 받아 창업하는 사람, 자격 미달”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도 “정부 재원은 한정돼있는데 중소기업에 의도적인 지원을 지속하고 있어 경쟁력 떨어지는 벤처·중소기업이 5년이고 10년이고 연명하고 있다”며 “시장 경제의 논리대로 경쟁력 없는 기업은 자연스럽게 퇴출되고 능력 있는 벤처 기업만 살아남아 중견·대기업으로 커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기창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는 “단지 취업을 못했다는 이유로 정부 보조금을 받아 창업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엄밀히 말해 이들은 기업의 채용 기준에도 못 미친 사람들”이라며 “호구지책으로 창업해 단순히 연명하는 벤처 기업에 정부 보조금을 준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