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있는 미국 드라마(미드)의 '한·미(韓·美) 동시 방송' 시대가 열렸다. 미국 현지에서 드라마가 방영된 지 48시간 이내에 한글 자막을 입혀 한국 IPTV·케이블TV에서 방송을 하는 것이다. 자막 작업 시간에 걸리는 시간을 제외하면 한국 시청자들이 미국 시청자와 거의 같은 시간대에 미드를 즐길 수 있게 됐다. 미국 3대 방송사인 ABC, NBC, CBS는 물론이고 메이저 제작사인 소니픽처스텔레비전과 영국 BBC도 최근 이 같은 '동시 방송' 체제를 갖춰 한국 안방시장 공략에 나섰다.

미드 韓·美 동시 방송시대 열렸다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제작사로 유명한 소니픽처스텔레비전은 지난 15일 신작 드라마 '마스터스 오브 섹스 시즌3'를 '동시 방송' 형태로 한국에 선보이기 시작했다. KT와 독점 제휴해 IPTV에 다시 보기(VOD) 서비스로 올리는 형태다. 연말까지 210여 편의 최신작을 선보인다.

미국의 최대 방송사 ABC도 연말까지 380여 편의 최신 드라마를 이런 방식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그레이 아나토미' '원스 어폰 어 타임' 등 인기 드라마 시리즈는 물론이고 '콴티코' '코드 블랙' 등 새롭게 시작하는 미드도 이 대열에 참가한다.

ABC와 경쟁하는 NBC유니버설은 25일 드라마 '히어로즈 시즌5'를 한국 시장에 내놓았다. 미국 방송 후 1~2일 내에 한글 작업을 마치고 VOD로 서비스하는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12몽키즈' 등 72편의 최신 드라마를 한국에 가지고 들어온다. 미국 CBS와 영국의 BBC 역시 연내에 동시 방송 경쟁에 뛰어든다.

미국 거대 제작사와 방송사들은 한국을 잠재력이 매우 큰 콘텐츠 시장으로 평가한다. 소니픽처스 홈엔터테인먼트의 중국·한국 담당인 켄로 수석 부사장은 "미국 방영일에 맞춰 미드를 한국에 제공, 한국 시청자들의 욕구를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판권 경쟁 과열로 가격 치솟아

과거에는 미국에서 방영한 신작(新作) 미드가 한국 시청자에게 소개되기까지는 3개월~1년 정도의 시차(時差)가 있었다. '프리즌 브레이크' 등 인기 미드가 이렇게 방영됐다. 이 기간을 기다리지 못한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불법으로 내려받아 봤다. 인기 미드는 인터넷에서 600만~1000만건이 불법 다운로드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런 상황은 지난 5월 LG유플러스가 인기 미드 '왕좌의 게임 시즌5'를 IPTV에서 한·미 동시 방송을 하면서 변했다. LG는 미국에서 방영된 지 2일 만에 합법적으로 TV에서 볼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았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한 편당 1000원의 유료 서비스인데도 VOD 이용 횟수가 20만회에 달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화제의 미드 신작이 시청 횟수 1만5000~2만5000건 정도였던 점에 비하면 폭발적인 인기였다.

이를 계기로 미국 거대 방송국들이 일제히 인기 미드를 한국에 동시 방영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됐다. 한국에 직접 채널을 설립할 필요 없이, VOD에 자신들의 콘텐츠만 집어넣으면 곧바로 한국 시청자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나라 시청자들은 전 세계에서 미드에 가장 빠르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장이 됐다. 게다가 국내 VOD 시장은 4년 전에 비해 6~7배 커지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예컨대 KT의 IPTV인 '올레tv'는 매월 VOD 이용건수가 3억회에 달한다.

문제는 미드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너무 과열됐다는 점이다. IPTV 업체의 한 관계자는 "각사가 판권 가격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지만, 최근 1~2년 새 미드 판권이 3~4배 올랐다"고 말했다.

국내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자 미국 업체들이 과도한 수수료를 요구하기도 한다. 내년 한국 시장 진출을 선언한 미국 최대의 유료 동영상 업체 '넷플릭스'는 KT·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CJ헬로비전 등 유료방송 업체와 협상을 하면서 '9대 1'의 수수료 배분 조건을 제시했다. 미드 시청료의 90%를 자신들이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협상을 했던 한 관계자는 "지상파 방송사도 통상 시청료의 70%를 갖는데 넷플릭스는 이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대가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료방송 업체들은 경쟁사가 넷플릭스의 조건을 수용할까봐 바짝 긴장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TV 프로그램 2000여 편과 영화 9000여 편을 보유하고 있다. 한 유료방송 관계자는 "미드를 사오는 데 돈을 많이 쓰면 그만큼 국내 방송채널에 줄 돈이 줄어드는 구조"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