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택배업체인 CJ대한통운은 올 추석 연휴에 택배기사 인력을 20% 정도 늘렸다. 배송 주문을 처리하는 컴퓨터 서버 용량은 작년 대비 1.5배 수준으로 증설했다. 작년 추석 직전 하루 230만 상자 수준이었던 배송 물량이 올해는 300만 상자 이상으로 30% 정도 늘었기 때문이다.

추석을 앞두고 국내 소비가 늘어나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충격을 딛고 회복 양상을 보이고 있다.

24일 기획재정부가 각 업계의 소비 상황을 취합한 결과, 이달 7일부터 20일까지 추석 대목 2주간 백화점 매출액은 지난해 추석 대목(8월 18~31일)과 비교해 16.3% 정도 늘었다. 같은 기간 대형마트 매출액은 1.1% 증가했다. 올 6월 메르스 타격으로 백화점과 대형마트 매출이 1년 전 같은 달 대비 10% 안팎 추락했던 것과 비교하면 의미 있는 변화다.

부산 강서구 대저동 우편집중국 직원들이 추석 연휴를 앞두고 소포와 택배 상자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백화점과 인터넷 쇼핑몰의 선물 매출이 크게 늘어나는 등 내수 시장이 살아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농축산물 매장에서 카드 사용액이 작년 추석 대목보다 13.8% 증가하는 등 추석 성수품과 선물 용품 특수(特需)가 내수 회복을 견인하는 주동력이 되고 있다. 편의점(61.8%), 세탁소(35.4%), 수퍼마켓(12.4%), 정육점(14.7%), 음식점(7.7%)에서도 카드 사용액이 늘면서 소비 회복의 온기(溫氣)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27일부터 시행된 개별소비세 인하 효과로 자동차·가전 판매도 늘었다. 이달 1일부터 20일까지 국산 자동차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4% 정도 증가했다.

주요 가전업체 대형TV 일평균 판매량도 개별소비세 인하 전 대비 30% 넘게 늘었다. 이달 1일부터 20일까지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전년 동기 대비 0.6% 감소에 그쳐 41% 정도 급감했던 올 6월 상황에서 크게 회복됐다.

소비 회복세에 힘입어 다소 부진했던 생산도 활력을 되찾아가고 있다. 제조업 활동을 가늠하는 이달 1~20일 산업용 전력 사용량은 전년 동기 대비 7.4% 증가했고, 고속도로 화물차 통행량은 19.4% 늘었다.

올 추석 경기(景氣)에서 돋보이는 특징은 기존 오프라인의 정체와 모바일 등 인터넷 쇼핑의 강세가 재확인됐다는 점이다. 모바일 쇼핑몰 업체인 쿠팡의 경우 올 추석용으로 준비한 6600원짜리 생활용품 선물세트 4만개를 2주 만에 모두 팔았다. 샴푸와 비누, 치약으로 구성된 초저가(超低價) 상품으로 일반 마트에서는 9900원에 파는 제품이다. 허준 쿠팡 팀장은 "한 푼이라도 더 싸게 구입하려는 고객들이 몰려 추가 주문한 1만개도 금세 동났다"고 말했다. 인터넷 쇼핑몰에 대한 주문이 늘면서 택배 물량도 늘었다.

추석 선물로는 실속형 상품이 인기를 끌었다. 고급 한우·굴비·고가와인이 퇴조하고 김·건어물·과일·실속형 햄 세트 등이 많이 팔렸다.

中低價 실속형 상품 폭발

백화점과 대형 마트에서는 중저가 실속형 상품 매출이 크게 늘었다. 롯데백화점이 5만 세트를 준비한 10만원대 '알뜰 한우선물세트'는 이달 24일까지 90% 정도 팔렸다. 우길조 상품본부장은 "한우선물세트 전체에서 10만원대 상품의 매출 비중이 지난해 25%에서 올해 40%로 뛰었다"고 말했다. 건강식품에서도 홍삼 제품보다 저렴한 비타민 선물세트가 많이 팔렸다.

이마트의 올 추석 선물 예약 판매 실적은 지난해에 비해 90% 가까이 뛰었다. 이마트 김윤섭 팀장은 "10% 추가 할인 혜택을 받으려는 기업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가형 상품의 바람을 타고 롯데마트에서는 지난해 판매량 순위 20위권에도 오르지 못했던 호주산 냉장갈비찜 세트(9만9000원)가 2위에 올랐다. 반면 한우 냉장맞춤세트(23만원)는 17위에 머물렀다.

국경절 연휴(10월 1~7일)를 앞두고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다시 늘고 있는 것은 호재다. 롯데면세점 소공점 백윤희 부점장은 "매일 7000명이 넘는 외국인 고객이 찾아 매출이 메르스 이전의 70~80%까지 회복됐다"고 말했다. 한국관광공사는 이번 국경절 연휴 기간에 작년보다 30% 많은 21만명의 중국인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내다봤다.

"혁신 제품, 새 유통 방식 개발이 관건"

유통 업계에서는 추석을 앞두고 소비가 늘었지만 완연한 내수 회복은 속단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하고 국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소득 정체와 노후 준비, 주거비 부담 등으로 지갑을 열기 어려운 소비자들이 많아 소비·지출이 크게 활성화되기 힘든 구조라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추석 직후인 10월 1~14일 2만7000여개 업체가 참여하는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와 추경 조기 집행, 관광·여가 및 분야별 투자 활성화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내수를 활성화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유통업계가 할인 등 단기적인 매출 증대 방안을 뛰어넘어 시장에 없던 신제품과 혁신적인 유통 방식을 개발해 소비를 촉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본식 장기 불황까지는 아니지만 저(低)성장과 내수 부진이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인 만큼 새로운 발상과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향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저가형 상품 라인업을 다양화하고, 값은 싸면서 디자인과 기능 면에서 차별화된 '프리미엄 이코노미 상품'을 지속적으로 내놓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