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연 지음|RHK|344쪽|1만6000원

연극 무대에 배우가 있다. 그가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라면 어떨까. 대사를 읊고 대본에 맞춰 동작하면 연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일본 오사카대 지능로봇연구소 소장 히로시 이시구로 교수는 ‘그렇다’고 말한다. 그는 실제로 연극 ‘사요나라’를 기획하고 주인공으로 로봇을 내세웠다. 주인공 로봇이 무대에서 불치병을 앓는 소녀에게 책을 읽어준다. 소녀가 죽자 주인공 로봇도 폐기된다.

히로시 교수는 로봇 기술과 예술을 합쳤다. 저자가 말하는 현대 과학과 예술의 대표적인 융합 사례다. 저자는 이를 두고 일찍이 ‘문화기술’이라는 말로 개념화했다. 세계 최초였다.

서울대 응용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전산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과학자지만 다양한 전시회 시리즈를 기획할 정도로 자신이 융합의 길을 걸어왔다.

‘그림이 있는 인문학’이라는 책 제목만 생각하면 자칫 인상파가 어떻고, 팝아트는 어디서 유래했다는 예술 입문서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색다른 이력에서 보듯이 꼭 그림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로봇, 3D 프린팅, 웨어러블 기기 같은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그중에서도 로봇 아트는 로봇이라는 기술이 어떻게 예술과 접목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저자에 따르면 로봇이란 단어 자체가 예술에서 나왔다.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펙이 연극 ‘로섬의 만능 로봇’에서 그 말을 처음 썼다.

흥미로운 사실은 3년 뒤인 1924년 이 연극이 일본으로 들어가면서 생긴 일이다. 일본 번역자는 로봇이란 생소한 단어를 ‘인조인간’으로 옮겼다. 로봇이란 단어 자체는 생소했지만, 일본인에게 로봇이라는 개념은 익숙했다. 에도 시대에 이미 차를 대접하는 로봇이 있었을 정도다.

일본의 로봇 문화는 그 후로도 앞서 갔다. 세계 최초로 인간처럼 걷고 계단을 오르는 로봇을 개발했고, 애완견 로봇 아이보도 출시했다.

로봇에 대한 인간의 감정을 정리한 용어도 일본에서 나왔다. 마사히로 모리 교수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로봇이 사람과 너무나 흡사해져 섬뜩한 느낌이 들 때를 가리키는 말이다.

로봇 개발 초기에는 인간을 닮아갈수록 사람이 느끼는 친근감이 커진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친근감이 골짜기로 추락하듯 혐오감으로 바뀐다. 그러다 로봇이 인간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똑같아지면 혐오감은 다시 친근감으로 바뀐다.

재미있는 설문 결과도 있다. 저자는 자신이 기획한 전시를 찾은 관객 3400명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순수한 인간을 0, 기계를 100이라고 할 때 당신은 얼마나 기계화됐다고 생각합니까?” “당신 신체 중에 기계로 대체하거나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부위가 있다면 어느 부위입니까?”

답변을 평균 내보니 자신이 39% 기계화돼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 뇌를 바꾸고 싶다는 응답이 1728명으로 가장 많았다. 다리, 눈, 유방, 입, 눈, 생식기, 소화기관 순으로 신체 일부를 기계로 대체하고 싶다고 했다.

저자는 “우리는 이미 우리 자신이 순수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제 로봇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이야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과학이 예술과 결합하는 것처럼 로봇도 우리 삶의 일부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책을 덮을 때면 과학과 예술의 밀접성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미술사 책처럼 시간 순서를 따른 것이 아니어서 어디서부터 읽더라도 지장이 없다. 카이스트와 서울대에서 강의한 교양 강좌를 정리해 내용 전개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 책 곳곳에 저자의 개인 경험을 녹여 넣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