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조사 나오기 1시간 전에 전화로 통보받고는 그로부터 석 달간 세무조사를 받았어요. 계속 자료를 더 내라 하고…. '고객 사은품으로 선물한 상품권을 누구에게 줬는지 보고하라'는 식으로 자세한 정보를 알려달라고 합니다."

석 달 전부터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A 중견기업 임원은 요즘 국세청이 경기 침체보다 무섭다고 하소연했다. 국세청은 특수조사를 전담하는 서울청 조사4국을 동원해 이 회사를 조사했는데, 방대한 자료 요구와 세무조사 직전에야 통보해주는 기습 조사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고 한다.

중화학 분야 B 그룹은 상반기에 계열사 한 곳이 세무조사를 당했는데, 최근 다른 계열사로 세무조사가 또 나와 직원들이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국세청이 계열사 조사 때마다 같은 자료를 요구하고 자료를 냈을 때 질책하는 내용도 똑같다. 이러다 보니 '결국 국세청이 목표로 정한 금액을 채울 때까지 조사하는 것 아니냐'는 푸념도 나올 지경"이라고 했다. 지난 5월 세무조사를 받은 유통 업종 C기업 관계자는 "이전에 받았던 조사에 비해 조사 인력이 3배 늘었다. 강도가 너무 세다"고 하소연했다.

기업들이 이전보다 훨씬 강도 높은 국세청의 세무조사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경기 침체로 가뜩이나 기업 경영이 어려운데,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예전보다 훨씬 강도가 세고, 기간도 길어져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는 것이다.

국세청이 작년 한 해 동안 세무조사로 걷은 세금은 8조2972억원인데, 이는 현 정부 출범 전보다 1조원 이상 불어난 것이다. 작년 세무조사 건수가 1만7033건으로 2012년과 2013년에 비해 1000건 이상 줄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횟수'는 줄고 '강도'는 높아진 셈이다. 복지 지출로 쓸 곳은 많아졌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 '증세'는 하지 않기로 했으니, 국세청이 전보다 더 엄격하게 세금을 찾아나선 것이다.

그 결과 국세청이 기업을 대상으로 세무조사하는 기간도 2011년 평균 28.7일에서 작년에는 36.2일로 늘었다.

국세청 내부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과거에는 특수조사를 전담하는 조사4국이 직접 나서는 경우가 적었고, 조사도 회사로 가서 서류를 들여다보고 오는 식이었는데 요즘은 다른 국이 맡아온 정기 세무조사까지 조사4국이 나서서 회계장부와 컴퓨터를 압수해 간다"고 전했다. 전직 세무 당국 고위 관계자는 "지금은 정기 세무조사를 하는 서울청 조사1국과 조사2국도 서류를 압수한다.

또 지방에 있는 기업을 해당 지방청이 아니라 다른 지방청에서 들여다보는 교차 조사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초 세무조사를 받은 한미약품은 본사가 서울인데, 부산지방국세청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안면 있는 국세청 직원에게 '봐달라'는 말도 못 꺼내게 만든 것이다.

최근 정기 세무조사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대기업은 아시아나항공(올해 3~5월), 한진해운(2014년 10~12월), 대우조선해양(2014년 12월), 현대중공업(올해 4월부터 진행 중), 삼성중공업(올해 5~8월), 대홍기획·롯데리아·롯데푸드 등 롯데 계열사(올해 7월부터 진행 중), 아모레퍼시픽그룹 계열사 에뛰드하우스(올해 6~9월 초), 제일모직, 두산인프라코어 등이 있다.

국세청의 그물망은 매년 더 촘촘해지고 있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개인사업자들에 대한 세무조사 건수도 늘고 있다. 새정치연합 홍종학 의원이 국세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작년 세무조사를 받은 개인사업자 가운데 연 매출 1억원 이하인 자영업자는 575명이었는데, 이는 2012년(505명)이나 2013년(483명)에 비해 늘어난 수치다. 작년 한 해 동안 연 매출 500억원 이하 중소기업 4182곳이 세무조사를 받았는데 이 역시 2012년(3624곳)이나 2013년(4008곳)에 비해 늘었다.

세무조사를 몇 년간 두세 번 반복해서 받는 기업도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최근 7년 동안 정기·비정기 세무조사를 합쳐서 3회 이상 세무조사를 받은 기업은 17곳, 2회 이상 조사를 받은 기업은 2383곳이었다. 탈세 혐의가 없는 한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5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데, 이례적으로 세무조사를 자주 받는 기업들이 있다는 말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국세 수입은 135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조9000억원 증가했다. 올 들어 부동산 거래가 활발해 지면서 세수가 크게 늘기도 했지만 국세청이 세무조사 강도를 높인 것도 원인이 됐다. 그 바람에 불황인데도 세무조사를 강하게 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기업들의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세무조사 건수는 줄이는 대신 좀 더 자세하게 탈세 혐의를 들여다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한다. 국세청은 또 "우리나라의 세무조사 비율은 여전히 미국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보다 낮다"고 밝혔다. 2013년 기준으로 한국의 법인 가운데 세무조사를 받은 법인은 전체의 0.9%인 반면, 미국은 1.3%에 달한다. 또 개인사업자의 경우, 2013년에 한국에서는 0.1%가 세무조사를 받은 반면 미국에서는 0.2%가 세무조사를 받았다.

국세청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세무조사 비율이나 조사 강도는 선진국에 비하면 심하다고 볼 수 없다"며 "미국 국세청(IRS)은 악의적인 탈세를 적발하면 아예 기업이 정상적인 영업을 하지 못할 수준의 세금을 매기는데 우리나라에선 세무조사 때문에 문 닫은 기업이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