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현지 시각) 영국의 반도체 칩 제조업체 다이얼로그 반도체가 미국 반도체 업체 아트멜을 46억달러(약 5조4211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주로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전력 관리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다이얼로그 반도체는 이번 인수를 통해 아트멜이 가지고 있는 사물인터넷(IoT), 무인자동차용 반도체 제조 역량을 확보하게 됐다. 다이얼로그의 잘랄 바게를리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인수가 마무리되면 스마트폰 업체에 대한 (매출) 의존도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세계 반도체 업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인수·합병(M&A)이다. 이번 다이얼로그의 아트멜 인수뿐만 아니라 수백억달러 규모의 초대형 M&A가 계속 이뤄지고 있다. 지난 3월 네덜란드의 반도체 업체 NXP가 모토로라에서 분사한 반도체 회사 프리스케일을 118억달러(약 13조9000억원)에 인수한 것이 시작이었다. 5월에는 싱가포르의 반도체 기업 아바고가 미국의 통신 반도체 업체 브로드컴을 370억달러(약 43조6000억원)에 인수했다. 6월에는 세계 반도체 1위 기업 인텔이 차량·군사·항공 등 다목적 반도체 기업 알테라를 167억달러(약 19조6800억원)에 인수했다. 이는 세계 반도체 업계 역사상 각각 1·2·3위에 해당하는 초대형 M&A였다.

반도체는 모든 IT(정보기술) 기기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부품이다. 이렇다 보니 IT나 제품의 발전 속도에 따라 반도체 시장 역시 함께 성장한다. 기존에 없던 IT 기기들이 출시될 때마다 새로운 반도체 업체들이 등장하고, 시장을 확대해가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모바일 D램(메모리 반도체), 모바일 AP(응용프로세서) 등이다.

하지만 작년부터 스마트폰 시장이 정체되면서 반도체 시장의 성장세도 꺾이기 시작했다. 차세대 IT 기기로 주목받는 사물인터넷용 가전제품이나 무인자동차, 드론(무인기) 등은 아직 태동 단계에 그치고 있다. 결국 새로운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까지 '버티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각 업체는 초대형 M&A를 통해 몸집을 불리고,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PC·서버용 CPU(중앙처리장치)의 강자인 인텔이 프로그래머블 반도체(제품에 따라 기능을 바꿀 수 있는 반도체) 업체인 알테라를 인수한 것이나 무선통신용 반도체 업체인 NXP가 차량용 반도체 기업인 프리스케일을 인수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인수된 업체들은 모두 향후 도래할 무인차·사물인터넷 등에 강점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반도체 업체들이 사물인터넷 분야에 베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존 사업의 규모는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