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환자가 건강검진을 받으면 엑스레이와 컴퓨터 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의 영상 판독은 영상의학과 의사가 한다. 암이 의심되는 환자는 인체 조직 일부를 떼어낸 다음 병리과 의사가 암세포 존재여부를 현미경으로 관찰한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에는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 미국 영상의학회에는 암 검진에서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 7%가량에서 암이 발생했다는 연구가 보고됐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컴퓨터가 의사의 역할을 대신해 진단의 정확성을 높이는 기술 개발이 한창이다.

20일 이코노미스트와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등에 따르면 환자의 빅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분석한 딥러닝 기술을 개발하는 미국의 벤처기업 ‘인리틱’이 헬스케어 분야의 주목할 기업으로 꼽혔다. 딥 러닝은 방대한 데이터에서 패턴을 발견한 뒤 사물을 구분하는 사람의 정보처리 방식을 컴퓨터에 적용시킨 인공지능(AI) 기술이다.

빅데이터와 딥러닝을 활용한 진단기술이 늘고 있다. 인리틱은 대량의 환자 영상기술을 이용해 의사의 진단을 돕는 역할을 한다. 5년 생존율과 사망률까지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인리틱의 질병 진단 기술은 2011년 스탠퍼드의대에서 처음 개발된 이후 지난해 데이터 과학자로 알려진 제레미 하워드가 회사를 설립해 완성하고 있다. 인리틱은 컴퓨터에 MRI, CT, 현미경 사진 등의 정보를 대량으로 입력했다. 일반인과 환자의 패턴을 분석하고 이상이 보이면 알려주는 알고리듬을 만들었다. 암 진단을 가능하게 하거나 암 세포가 있는 부분을 정확히 식별할 수 있게 했다.

인리틱은 유방암 세포 특성을 6642가지 유형으로 분석한다. 분석결과를 토대로 5년 이내 완치율이나 사망률을 예측한다. 회사 측은 영상진단 기술의 장점으로 수천명의 의사의 경험을 한 곳에 집중해 의사의 진단을 빠르고 정확하게 돕는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하워드 대표는 “컴퓨터가 인간보다 정확하게 암세포를 판정할 수 있다”면서 “사람은 암을 제대로 판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반면 컴퓨터는 단기간에 학습하고 알려준다”고 밝혔다.

아직 연구 단계인 컴퓨터 진단기술은 정확성이 관건이다. 인리틱도 정확한 시장 출시 시점을 밝히지 않고 있다. 미국 의학계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진단의 정확성을 확인하는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 환자들에게 데이터 사용 동의를 얻어내는 과정도 필요하다. 미국 개인정보보호법에는 연구 목적이라도 환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컴퓨터를 활용한 영상진단 시장 전망은 밝다.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에 따르면 글로벌 영상진단 시장은 2022년까지 14억3000만달러(1조 662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헬스케어 빅데이터 사업에 주력하는 IBM은 지난달 10억달러(1조 1620억원)를 투자해 의료영상 진단기업인 머지헬스케어를 인수했다. 의학계 전문가들도 환자들이 정확한 진단을 요구하면서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컴퓨터 진단기술을 적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도 최근 들어 영상의학과와 병리과 진단의 빅데이터 연구가 시작됐다. 의료영상 스타트업(창업) 기업 뷰노와 서울아산병원이 공동 연구를 진행한데 이어 클디와 삼성서울병원도 연구를 시작했다. 서울대의대는 이런 내용으로 지난달 정보의학 세미나를 열었다. 의학계는 유전체 분석이나 생활습관 정보까지 쌓이면 컴퓨터를 활용한 진단기술이 더 유용할 것으로 기대했다.

최형진 서울대의대 교수는 “모든 진단과 치료를 과학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데이터를 요구하는 시기가 있었고, 이제는 데이터를 하나로 모을 수 있게 됐다”며 “환자는 보다 적절한 치료를 받고 국가는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