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명 기업이나 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닌, 한 지방 소재 중소기업이 새 주인이 된 PEF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여가며 주목을 받고 있다. 자동차 연료펌프와 모듈, 연료시스템 관련 부품 등을 제조하는 자동차 부품업체 코아비스가 그 주인공이다.

코아비스는 과거 대우그룹 계열사로 출범했지만, 그룹 해체 이후 눈에 띄는 성장을 하지 못한 채 현실에 안주하는 중소 부품사로 명맥을 이어가다 지난 2013년 국내 PEF인 한앤컴퍼니에 인수된 이후 과거와 전혀 다른 모습의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오랜 파트너회사였던 제너럴모터스(GM)로부터 더 많은 납품 물량을 수주받고 있는 데다, 세계 1위 자동차 업체인 폴크스바겐의 새로운 납품사로 선택받는 등 글로벌 시장에서의 진출 속도를 높이고 있다.

◆ 성장 멈췄던 옛 대우 계열사, IMF 이후 존폐 위기 몰리기도

세종시에 위치한 코아비스 생산 공장에서 한 근로자가 연료펌프 공정 작업을 하는 모습

코아비스의 역사는 지난 1994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우그룹이 대우자동차에 들어가는 연료펌프를 자체 제작하기 위해 충남 연기군(현 세종시 연서면)에 설립한 ‘한국자동차연료시스템’이란 회사가 바로 코아비스의 전신이다.

한국자동차연료시스템의 성장 속도는 빨랐다. 회사 지분의 49%를 가진 미국 자동차 부품업체 왈브로와의 기술 제휴를 통해 설립된 지 1년 여뒤인 1996년부터 연료펌프 자체 제작에 성공해 대우자동차에 납품을 시작했다.

그러나 회사의 성장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영난을 겪던 대우그룹이 결국 해체되자, 계열사였던 한국자동차연료시스템도 위기를 맞은 것. 설상가상으로 금융당국으로부터 퇴출기업 중 한 곳으로 지정되면서 한 때 존폐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다행히 한 개인투자자에게 인수돼 간신히 퇴출 위기를 넘긴 한국자동차연료시스템은 이후 2000년 회사 이름을 캐프스로 바꾸고, 기술개발(R&D)에 더욱 매달리게 된다. 대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 경쟁이 치열한 자동차 부품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높은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 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 것이다.

GM 본사가 매년 우수 글로벌 협력사에 주는 ‘소이(SOY) 상’

연료펌프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회사는 비로소 안정적인 납품 기반을 갖추게 된다. 옛 대우자동차를 이어받은 GM대우에 연료펌프 등을 공급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은 뒤 2006년 GM의 신규 글로벌 프로그램 연료펌프모듈 공급업체로 선정돼 미국 본사를 비롯한 글로벌 GM 생산라인에 부품 공급을 시작했다. 또 안정적인 제품 공급과 품질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 연속으로 GM이 우수 파트너사에게 수여하는 ‘소이(SOY) 상’을 받기도 했다.

◆ 퇴출 위기 넘겼지만, 성장은 정체…中企 한계 부딪혀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연구개발에 매달린 끝에 간신히 자동차 부품시장에서 살아남는 데는 성공했지만, 수익 확대를 위한 전략이나 마케팅 등에서 한계를 드러내며 점차 성장이 벽에 부딪히게 된 것이다.

2010년 회사 이름을 코아비스로 바꾸고, 대주주가 직접 경영 일선에 뛰어들었지만 상황은 별반 나아지지 못했다. 이미 GM이라는 안정적인 납품대상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이 다른 자동차업체를 고객사로 뚫으려는 노력이 부족했고, 많은 비용이 투입되는 해외 시장 공략도 주저한 탓에 매출과 영업이익은 모두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계속 성장은 정체되기만 했다.

회사가 성장을 멈춘 채 조금씩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이면서 납품처인 GM과의 관계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GM은 다양한 글로벌 업체들과의 파트너십 확보를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자동차 부품 시장에 맞춰갈 것을 요구했지만, 코아비스가 이를 제대로 따르지 못하면서 신뢰 관계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GM과 납품사와의 신뢰에 대한 ‘보증수표’나 다름없는 소이상 역시 2013년에는 수상에 실패하고 말았다.

◆ ‘굴뚝산업’에 투자하는 PEF, 자동차 부품사를 선택하다

코아비스의 주력 생산제품인 연료펌프 모듈

성장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점차 내부에서 위기론이 늘어갈 무렵 회사의 경영권은 한앤컴퍼니로 넘어갔다. 한앤컴퍼니는 2012년 코아비스의 대주주였던 이희열씨로부터 지분을 인수한데 이어 이듬해 다른 주요주주인 S&T모티브로부터 잔여지분을 사들여 코아비스의 100% 주주가 됐다.

한앤컴퍼니는 당시 설립된 지 약 3년이 된 신생 PEF였다. IT 부품업체인 코웰이홀딩스와 대한시멘트, 한남시멘트, 쌍용양회 등 주로 제조업 기업에 투자해 PEF 업계에서는 ‘굴뚝산업’에 대한 투자에서 전문성을 가진 운용사로 꼽혔지만, 자동차 부품 분야에 대해서는 별다른 투자 경험이 없었다.

자동차 부품 산업이 경기에 민감한 영향을 받고, 치열한 경쟁으로 실적이 한 순간에 꺾일 수도 있는 것을 감안하면 다소 위험한 투자였던 셈이다.

그러나 한앤컴퍼니는 20년 가까이 축적된 코아비스의 연료펌프모듈 관련 기술력에 주목해 투자를 결정했다.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숱한 위기를 넘기면서 글로벌 자동차업체인 GM 본사로부터 5년간 우수 납품업체로 선정될 정도의 제품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재무구조 개선과 해외 영업 등 기술 외적인 부분에서의 체질 개선에만 성공하면 기업가치가 크게 올라갈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 외부인재와 순혈출신의 조화지방 中企 체질 바꾼 '3대 개선조치'

경영권 인수 뒤 한앤컴퍼니의 코아비스의 개혁 작업은 발 빠르게 진행됐다. 한앤컴퍼니는 먼저 GM과 야후, IBM 등 주요 다국적 기업에서 경력을 쌓았던 이인영씨를 새로운 CEO로 영입했다. GM 외에는 별다른 고객사를 확보하지 못한 채 해외 영업과 마케팅에서 고전하고 있던 코아비스의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는 특히 GM 근무 시절 대우자동차 인수에 참여했었고, 중국과의 합작회사인 상하이GM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어 여러 모로 코아비스의 새로운 수장으로 적격인 인물로 평가됐다. 이 밖에도 동부그룹에서 오랜 기간 경영관리 업무를 맡았던 배무근씨를 재경관리 부문장으로 영입해 뒤를 받쳤다.

손인석 코아비스 연구개발부문 부서장. 대우그룹 공채 출신으로 코아비스의 설립부터 참여한 손 전무는 한앤컴퍼니 인수 이후에도 R&D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기술 분야에서는 코아비스의 주축 인력들을 그대로 중용했다. 대우그룹 공채 출신으로 약 20년간 회사를 지키며 연료펌프를 비롯한 주력제품 개발에서 잔뼈가 굵었던 손인석 연구개발부문 전무에게 R&D 분야에 대한 전권을 맡겼다.

한앤컴퍼니와 새 경영진은 코아비스의 경영체질 개선을 위해 연공서열 중심에서 성과평가 중심으로 인사 보상 체계를 바꾸고, 엄격한 비용과 납품업체 관리, 선제적인 리스크 대응 등의 내용을 담은 ‘3대 전략 과제’를 선정해 시행했다. 오랜 기간 별다른 변화 없이 우물 속에 머무는 동안 인사와 재무, 위험관리 등 기본적인 경영 시스템에서 문제점을 노출한 것이 코아비스 성장의 발목을 잡은 요인이었다고 본 것이다.

특히 새 경영진이 중점을 둔 것은 전 직원이 참여하는 선제적 리스크 관리 시스템 구축이었다. 가장 확실한 납품대상이 GM 단 한 곳 뿐이라 납품 관계나 수출 지역의 경기, 노사 관계 등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길 경우 실적이 크게 영향을 받게 될 수 밖에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한앤컴퍼니와 새 경영진은 회사의 위험관리를 특정 리스크 관리 부서나 담당 부문장 총괄로 진행하는데서 벗어나, 각 팀별로 상시 위험관리에 나서는 한편 각종 이슈에 대한 점검과 보고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예로 지난 7월 주요 납품처인 한국GM에서 파업 가능성이 커지자 각 팀별로 파업에 따른 수주물량 변화와 재무 손실 등의 영향을 예측해 사전 대응에 나섰다. 최근에는 중국의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GM을 비롯한 주요 자동차업체들의 판매량 추이를 토대로 연료펌프를 비롯한 주요 제조부품들의 구매량 변화 등을 분석하고 있다.

◆ 보쉬, 델파이 제치고 폴크스바겐 공급사로…글로벌 무대 보폭 넓혀

한앤컴퍼니로 경영권이 넘어간 지 약 2년이 지난 지금 코아비스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실적이다. 2012년 79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은 이듬해 96억원으로 21.5% 증가했다. 지난해 이익은 122억으로 전년대비 27.8% 늘었다. 영업이익률도 2012년 4.8%에서 2013년 6.1%, 지난해 8%로 매년 개선되고 있다. 아직까지 GM에 대한 납품 의존도가 높아 매출액은 별다른 변화가 없지만, 한앤컴퍼니 인수 뒤 철저한 비용 관리가 이뤄지면서 이익 규모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연간 1400억원대에 머물던 매출액도 곧 큰 폭으로 증가할 예정이다. 지난해 국내 연료펌프 모듈 제조업체로는 유일하게 폴크스바겐의 부품 공급사로 선정돼 2017년부터 매년 120만개의 부품을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폴크스바겐의 부품사 선정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특히 정밀한 기술력이 요구되는 연료펌프 모듈의 경우 본사의 기술담당 임원이 장기간 현지에 파견돼 세심하게 기술 수준과 공급 능력 등을 살핀다. 이 때문에 주요 자동차업체들의 연료펌프 모듈은 주로 독일 보쉬나 미국 델파이, 일본의 덴소 등 세계적으로 이름이 높은 부품업체들이 대부분의 물량을 공급하고 있다.

한앤컴퍼니는 코아비스 인수 직후부터 새 경영진과 함께 GM 이외의 글로벌 자동차회사를 고객사로 확보하는데 주력했다. 특히 세계 최대 자동차 제조사인 폴크스바겐의 납품업체로 선정될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의 인지도가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판단해 전력을 쏟았다. 결국 폴크스바겐은 지난해 한 달여간의 실사를 진행한 끝에 코아비스의 기술력에 합격점을 줬고, 보쉬, 델파이 등 이름난 글로벌 부품사를 제치고 코아비스를 새로운 연료펌프 공급 파트너로 낙점했다.

폴크스바겐 FAST 프로젝트의 국내 파트너사 현황

코아비스가 폴크스바겐에게서 얻어낸 성과는 또 있다. 지난달 4일 발표된 폴크스바겐의 미래 자동차 프로젝트(FAST)의 공동 개발사로 선정된 44개 기업 중 한 곳으로 포함된 것이다. 국내 기업 가운데 FAST의 파트너사로 꼽힌 곳은 코아비스를 포함해 LG전자와 LG화학, 포스코 등 단 4개사 뿐이다. 중소기업인 코아비스가 폴크스바겐의 신성장동력이 될 FAST의 공동 개발사로 이름을 올리면서 규모와 명성에서 한참 앞서는 대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현재 코아비스는 GM과 폴크스바겐 외에도 다른 자동차 업체들을 고객사로 확보하기 위해 꾸준히 해외 영업과 마케팅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이와 함께 주력 제품인 연료펌프 모듈은 물론 전장부품과 스마트카 등으로 보폭을 넓히며 회사의 규모를 키우고 있다. 과거 5년 연속으로 받았다가 2013년에는 놓쳤던 GM의 소이상도 지난달 3월 다시 수상하는데 성공했다.

손인석 코아비스 연구개발부문 전무는 “한앤컴퍼니로 인수된 이후 가장 눈에 띄게 강화된 점은 글로벌 시장에 대한 접근성과 미래 성장에 대한 기획력, 위험 관리 능력”이라며 “폴크스바겐 협력사와 FAST 대상업체 선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인지도가 한층 높아져 향후 더 빠른 성장을 이어갈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