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모(33)씨는 최근 지갑을 잘 들고 다니지 않는다. 대신 주머니 안에 스마트폰 하나만 넣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크게 없다. 박씨의 스마트폰 '갤럭시S6'에 자주 쓰는 신용카드 4장이 저장돼 있어서 물건 값을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주머니 속에 꼭 챙겨야하는 것 하나가 줄어들어 훨씬 편하다"며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지갑을 찾았지만 조금 지나니까 금방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전화·메시지·웹서핑 등에 사용됐던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생활을 바꾸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 '지갑과의 전쟁'이다. 온라인·모바일 쇼핑몰에서 주로 쓰던 스마트폰 간편결제가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쓸 수 있게 되면서 점차 지갑을 대체해가고 있는 것이다.

지갑과 경쟁하는 스마트폰

지갑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팔 때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과거 금화·은화로 결제할 때에도 이를 담아 다닐 주머니가 있었다. 1950년 미국에서 신용카드가 처음 등장한 이후에도 이를 넣어 다닐 지갑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플라스틱 카드가 필요했던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손쉽게 결제할 수 있는 스마트폰 간편결제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삼성페이', 애플의 '애플페이' 등이 대표적이다. 구글 역시 지난 6월 '안드로이드 페이'를 공개했다. 지난달 20일 한국에 처음 출시한 삼성페이는 2주 만에 30만장 넘는 신용카드·체크카드가 등록됐다. 사람들이 하루 평균 2만장 넘는 카드를 등록한 셈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우리의 라이벌은 다른 간편결제 서비스가 아니라 고객의 주머니에 들어있는 지갑"이라고 말했다.

지갑을 버리고 스마트폰을 택한 사람들은 "가볍고 안전한 점이 편리하다"고 말한다. 대학원생 유상욱(30)씨는 "지갑은 보통 5~6장의 카드에 현금까지 넣으면 빵빵해진다"며 "바지에 지갑과 스마트폰을 둘 다 넣고 다니기 불편해 외출 시 필수품을 스마트폰 하나로 줄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지갑은 한 번 잃어버리면 다른 사람이 내 신용카드를 무단사용할 위험이 있다. 이를 막으려면 카드사마다 전화해서 사용을 정지시켜야 한다. 반면 간편결제는 지문인식·비밀번호 등 본인 확인용 보안 수단이 있어서 스마트폰을 분실·도난당해도 무단 사용 위험이 낮다. 직장인 최모(34)씨는 "얼마 전에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어느 카드사에 가입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고생했다"며 "스마트폰 간편결제를 쓰면 이런 불안감은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구글 등 세계시장 진격 중

IT(정보기술) 기업들은 급속도로 간편결제 서비스를 확산하고 있다. 삼성은 최근 공개한 스마트워치 '기어S2'에도 삼성페이를 탑재했다. 애플은 작년 미국에서 100만개가 넘는 애플페이 가맹점을 확보했다. 올 7월에는 영국에도 서비스를 시작해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까지 애플페이로 탈 수 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쓰는 모든 스마트폰에서 사용 가능한 '안드로이드 페이'를 공개하고 출시 준비 중이다. 유통 업계도 적극적이다. 미국 월마트·타깃·베스트바이 등 대형 유통업체들은 공동으로 '커런트C'란 간편결제 서비스를 개발해 테스트 중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간편결제가 전면적으로 지갑을 대체하기에는 여전히 난관이 많다. 지갑 안의 현금과 신용카드는 모든 매장에서 쓸 수 있지만 간편결제는 대부분 NFC(근거리 무선통신) 방식의 결제단말기가 있는 곳에서만 쓸 수 있다. 아직 다수 매장에는 NFC 단말기가 깔리지 않은 상태다. 삼성페이는 일반 결제기에서도 사용 가능하다고 해도 일부 가맹점에서는 쓸 수 없다.

한양대 한상린 교수(경영학)는 "향후 사람들은 지갑 대신 스마트폰·센서 등 더욱 간편한 방식으로 결제하는 것을 선호할 것"이라며 "간편결제의 보안·편의성 등이 더 개선되면 지갑은 쇠퇴의 길을 걷고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