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진행 13년차를 맞는 뉴타운은 현재 어떤 모습일까. 주민 간 갈등이 계속되는 데다, 출구전략을 서두르는 서울시와 충돌을 빚고 있는 한남뉴타운은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반면 최근 주민들의 요청으로 일부 구역이 해제된 영등포뉴타운은 거래가 살아나고 있다.

◆ 12년째 ‘정지 상태’ 한남뉴타운…조합원간 의견대립·서울시와도 충돌

4일 오전에 찾은 한남뉴타운은 낡은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좁은 골목 사이로 들어선 건물들의 외벽은 페인트 칠이 벗겨져 회색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날 정도였다. 일부는 철골 구조까지 드러날 정도로 낡았다. 한남1구역에 위치한 한 건물에는 지구 지정 반대 동의서를 모으는 내용의 현수막도 걸려 있었다.

한남1구역에 위치한 건물 벽에 1구역 지구지정 반대 동의서를 모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한남뉴타운은 2003년 11월 제2차 뉴타운 지구 지정 때 용산구 보광동과 한남동 등 일대(111만205㎡)에 지정됐다. 한남1~5구역으로 나뉘어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착공이 이뤄진 곳은 아직 한 군데도 없다.

한남1구역은 소유자 4분의 3 이상의 재개발 동의를 얻지 못해 조합 설립조차 안된 상황이다. 인근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1구역은 앞으로도 조합 설립 자체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1구역은 다른 구역들에 비해 집값도 비싸고 큰 길가에 위치해 있어 개발 유인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다.

이대섭 공인중개사는 “대로변에 위치한 1구역 내 주택은 3.3㎥당 4000만원이 넘을 정도로 집값이 비싸 개발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가구 거리와 소방도로 쪽으로 소 상권이 형성돼 상가가 많기 때문에도 조합 설립 동의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조합이 설립된 한남2구역도 조합원 간 의견 대립이 있다. 이태원 거리가 관광 특구로 지정된 이후 인근 상권이 살아나 개발을 원하지 않는 조합원이 늘어난 것이다.

한남2구역에 거주 중인 전모씨는 “이태원 상권이 살아났는데, 상가가 있는 사람이면 누가 재개발을 하고 싶어 하겠느냐”며 “상권에 건물이 없는 2구역 주민들 중에서도 차라리 재개발이 폐지돼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꽤 된다”고 말했다.

추진 속도가 가장 빠른 한남3구역은 조합 설립 후 건축 심의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서울시가 조합이 제출한 건축심의안 재상정 보류를 결정하면서 사업이 늦춰지게 됐다.

서울시가 재건축 전면 재검토를 결정한 한남뉴타운 일대

서울시는 한남3구역 이외 구역이 대부분 조합설립과 건축심의 이전 단계인데, 한남3구역은 건축심의단계에서 인접구역을 포함한 한남지구 전체와의 도시경관, 건축배치, 녹지축, 차량과 보행동선 연계 등을 다시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보류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남3구역 주민들은 서울시의 일방적인 행정 처리에 불만이 많은 상황이다. 한남3구역은 이미 건축 심의만 7번째 시도 중이다. 한남3구역 조합 측은 2012년에 조합을 설립해 서울시가 내린 가이드라인에 맞춰 개발을 준비해 왔는데 이제 와서 새로운 기준에 맞추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한남뉴타운 1구역 추진위원장과 2~5구역 조합장은 7일 대책 회의를 열고 의견 수렴에 나설 예정이다. 이수우 한남3구역 조합장은 “조합원들이 매우 화가 난 상태”라며 “서울시청 앞 시위, 청와대 민원, 언론을 통한 대응은 물론, 최후의 수단으로는 법정 소송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 영등포뉴타운 해제 반기는 주민들

반면 영등포뉴타운은 사뭇 다른 분위기다. 최근 전체 면적 3분의 1 이상이 해제되면서 일대 주민들이 반기고 있다. 해제 뒤로 거래문의도 늘고 땅값도 상승세다.

4일 오전에 찾은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2가에는 백여개가 넘는 소형 설비기계·공구 상가가 먼지 쌓인 골목마다 빽빽히 들어서 있었다. 영등포5가에도 식당과 이발소, 당구장 등 다양한 업종의 영세 점포가 많았다.

영등포뉴타운 지구 위치도. 파란색으로 표시된 곳이 최근 해제된 구역이다.

이 일대는 서울시가 올 7월 30일자로 영등포뉴타운(재정비촉진지구)에서 해제고시한 곳이다. 영등포뉴타운 총 26개구역 중 16개구역이 여기에 해당된다. 면적도 전체(22만6478㎡)중 3분의 1이 넘는 8만3566㎡에 달한다. 한남뉴타운과 함께 제2차 뉴타운 지구로 지정된 지 약 12년 만이다.

해제된 이유는 사업이 지지부진한 데다, 주민들의 반발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인근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수십년 간 거주해 온 건물주들이 많은데 개발이 시작됐다면 이 지역을 떠나야 했다고 한다. 억대의 분담금을 감당할 수 없는 탓이다.

영등포5가 S공인 관계자는 “과거 뉴타운으로 지정되고 한동안 정부가 전용 85㎡초과 중대형 주택을 짓기를 권고했는데, 주민들이 분담금을 감당하기 쉽지 않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면서 “이 지역 전용 118㎡ 분양가가 5억 후반대인데, 이곳 주민들은 2억~3억원도 낼까 말까다”라고 전했다.

이 지역에 교육시설이나 대형 상업시설 등 개발을 유도할 수 있는 인프라가 전혀 없는 반면, 영등포뉴타운 사업 속도가 빠른 지역보다 땅값이 비싸 사업성이 떨어졌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부동산 경기 침체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실제 해제된 16개구역 중 추진위원회가 설립된 곳은 단 한 곳이고, 15개구역은 추진위조차 만들어지지 않았다.

영등포5가 D공인 관계자는 “2017년 주상복합이 들어서는 영등포뉴타운 1-4구역과 같이 사업 진행 중인 지역과 비교하면, 해제된 지역은 영등포 중심상권이 길 건서 붙어있고 5호선 영등포시장역도 붙어있어 상대적으로 땅값이 비쌌지만 인프라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7월 영등포뉴타운 지구에서 해제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5가 일대. 노래방과 음식점 등 여러 업종의 영세 점포가 들어서 있다.

영등포뉴타운 1개 지구에 구역이 무려 26개로, 조각조각 나뉘었다는 점도 사업성을 떨어뜨리는 데 한몫했다. 사업 진척 속도가 빠른 지역은 상대적으로 구역 면적이 넓다.

해제 이후인 최근에는 일대 거래가 살아나고 있다. 지구를 둘러싼 각종 규제가 풀리니 해당 지역에 빌라나 소형 오피스텔 등을 짓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등포5가 Y공인 관계자는 “지난해 말 대비 최근 일대 시세가 10~20% 상승했다”면서 “빌라 등을 짓고자 하는 개발업자들도 나서서 땅만 나오면 사고 있고, 건물주들도 매물을 걷어들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영등포5가 N공인 관계자는 “지구에서 해제된 영등포2가 한 구역의 땅값은 그전까지 3.3㎡당 2000만~2300만원에 거래됐는데, 해제 되자마자 호가가 3.3㎡당 200~300만원이 바로 뛰었다”면서 “뉴타운 지정 당시 3.3㎡당 2000만원대 후반까지 올랐지만 2008년쯤 3.3㎡당 1200만원대까지 급추락했었고, 최근들어 가격이 회복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