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뮬러 스쿨 체험에 나선 본지 조정훈 스포츠부장.

"두둥, 두두둥."

거친 엔진 소리에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헬멧을 쓴 채 좁은 콕핏(cockpit·조종석)에 겨우겨우 온몸을 구겨넣고 앉아 팔다리 어깨 허리에 안전벨트를 조여매고 핸들을 잡으니 숨이 콱 막혔다. 마치 온몸을 밧줄로 묶어놓고 운전을 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부아앙~.' 1600cc 수평대향 엔진을 장착한 5단 수동 기어 방식의 FK-1600 포뮬러카는 괴물이었다. 직선 코스에선 시속 200km 가깝게 내달렸다. 차체 밖으로 머리를 내놓고 운전하는 방식이라 체감 스피드는 시속 300km도 넘는 듯했다. 처음엔 아무리 목에 힘을 줘도 수시로 목이 뒤로 꺾이곤 했다. 트랙 위에서의 헤드뱅잉(headbanging)이었다.


국내 포뮬러 대회의 부활

지난달 30일부터 이틀간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인제스피디움에서 열린 '킴스레이싱 포뮬러스쿨'에 직접 참여해 포뮬러 드라이빙을 체험했다. ㈜코리아포뮬러(대표 김성철)가 개최한 이 교육과정을 수료한 드라이버들은 오는 10월 4일 전남 영암 F1 서킷에서 열리는 KIC컵레이스 3전 FK-1600 포뮬러 경기에 출전하게 된다. 내년 시즌에는 총 15대가 본격적인 시리즈를 펼칠 예정이다.

포뮬러는 자동차 레이스를 위해서만 만들어진 머신이다. F1(포뮬러 원), F3000, F3 등이 있으며 FK-1600은 본격적인 포뮬러로 가는 관문 성격이다. 14세 이상이면 누구나 도전 가능하다.

"새로운 도전을 꿈꾼다"

이번 교육에는 '5학년'에 들어선 기자를 비롯해 문태국(40), 진영석(36), 이원일(33), 김현수(32), 문용(28), 지명호(17) 등 다양한 연령층의 드라이버들이 참가했다. 대부분 국내 자동차경주 투어링카 부문이나 카트 레이스에 출전하는 선수들이다. 서킷 라이선스(경주장 이용 허가증) 발급을 위한 교육에 이어 첫 체험 주행이 끝나자마자 김성철(50) 대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RPM(분당 회전수) 4000 안에서 주행하며 차의 특성만 파악하라"는 지시를 무시하고 일부 선수가 '과속 주행'을 했기 때문이다. "차의 특성을 모르고 운전하는 건 무모한 짓입니다. 그럴 거면 그만두세요." 분위기는 조금 가라앉았지만 참가자들의 자세는 진지해졌다.

자동차 레이스 드라이버 교육 프로그램인‘킴스레이싱 포뮬러스쿨’에 참여한 조정훈 본지 스포츠부장(5번 차량)이 지난달 30일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인제스피디움에서 FK-1600 포뮬러카를 몰고 트랙을 질주하고 있다.

데이터 로거(data logger)라는 장치를 이용해 서로의 운전 스타일을 비교하는 교육은 다양한 질문과 토론으로 뜨거웠다. 데이터 로거는 주행기록을 수집한 뒤 스피드나 운전 스타일 등을 비교 분석하는 시스템이다. 정비와 교육을 담당한 안정민(33) 팀장은 "코너 진입 때 브레이크를 정확하게 밟고 코너에 진입한 뒤에는 빠르게 가속을 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며 일대일 비교를 통해 문제점을 집어냈다.

2015년 8월30일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인제스피디움에서 열린 '킴스레이싱 포뮬러스쿨'에 참가한 조정훈 조선일보 스포츠부장의 사고 장면. 기자는 카트대회 입상 경험이 있었지만 카트보다 2배 이상 빠른 포뮬러 카가 순식간에 미끄러지는 걸 제어하지 못했다.

아찔한 스핀

국내 모터스포츠의 성지(聖地)로 꼽히는 인제스피디움 트랙 길이는 3.908㎞. 19번 코너를 돌아야 하며 최대 고저차(高低差)는 42m다. 차체가 지면에서 불과 7㎝ 떠 있는 FK-1600을 타고 뱀처럼 굽은 S자 코스와 보이지 않는 내리막을 처음 달릴 땐 말 그대로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도 몇 차례 주행을 통해 자신감이 생기자 욕심이 생겼다. 취미로 카트를 시작한 뒤 공식 대회 2위 입상 경험도 있었던 까닭에 "전륜(前輪)구동인 양산차를 운전하던 드라이버들보다는 포뮬러처럼 후륜구동 스타일인 카트를 경험한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아난 게 문제였다. 아차 싶더니 내가 몰던 머신이 코스를 이탈해 잔디밭을 뭉갠 뒤 펜스에 부딪혔다. 모든 코스를 CCTV로 지켜보던 통제실에서 곧바로 구난차량을 투입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원초적인 레이싱"

이틀간 집중 교육을 받은 뒤 주행 결과를 분석해보니 첫날 평균 시속 98km로 '유람' 수준이던 스피드가 115㎞로 빨라졌다. 코너를 돌 때 발생하는 횡가속도(lateral acceleration) 그래프도 상위권 선수들과 비슷한 모양으로 바뀌었다.

랩타임 측정에서 참가자 중 가장 좋은 기록을 낸 이원일은 "얼굴로 공기저항을 이겨내려다 보니 목이 너무 아프다"며 "포뮬러는 원초적인 레이싱 테크닉을 익힐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했다. 유일한 고등학생 참가자 지명호는 "기어를 넣어본 적이 없어서 아버지가 빌려준 트럭에 앉아서 기어 넣는 연습을 하고 왔다"며 "F1 드라이버의 꿈을 이루기 위해 본격적으로 도전해 보고 싶다"고 했다.

김성철 대표는 "초급 과정부터 전문 드라이빙 스쿨까지 다양한 교육을 통해 포뮬러의 저변을 넓힐 계획"이라며 "국내 모터스포츠가 다양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