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법무법인(로펌)이 소속 변호사의 과거 경력을 몰랐을 리는 없다. 그런데 재판에 실제 영향을 미치기 위해 변호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는지 상당히 애매하다.”

지난 달 말 대구지방변호사회에 전화를 걸어 대구 법조계를 떠들썩하게 한 박모 판사의 변호사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징계여부를 질문했다. 박 판사를 자신이 근무했던 고법 사건 변호사로 내세운 A로펌에 대한 징계절차가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대구변호사회 관계자의 답변은 기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박 판사는 경력법관에 선발돼 판사로 임용된 날 바로 변호사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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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구변회 관계자는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는 게 회장님의 뜻”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최근 법조계에선 이번에야 말로 전관 예우를 뿌리 뽑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23일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을 무효라고 선언했다. 이 판결을 내린 대법관들도 언젠가는 퇴임할 예정이니, 자기 손으로 제 머리를 깎은 셈이다.

서울중앙지법도 형사합의부 사건을 맡은 변호사가 재판부와 일정한 연고 관계일 경우 재판부를 재배당하기로 했다. 형사부 판사들의 ‘은밀한 즐거움’이 상당 부분 사라질 것이 뻔한 조치다.

사법부의 정상에 섰다 퇴임하는 대법관들의 ‘변호사 불개업’ 선언도 이어지고 있다. 오는 16일 퇴임하는 민일영 대법관은 퇴임 이후 사법연수원 석좌 교수로 자리를 옮긴다. ‘새로운 거물 전관’의 출현에 가슴 졸이던 서초동 변호사 업계도 안심하는 분위기다. 후임 대법관 후보인 이기택 후보자도 “퇴임 후 돈을 벌기 위한 변호사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박상옥 대법관도 지난 4월 “퇴임 후 사건 수임 안하겠다”고 공언했다.

대한변호사협회나 서울지방변호사회도 ‘전관예우 타파’를 위해 유래 없이 적극적이고 뛰고 있다. 개인 변호사, 로 펌 가릴 것 없이 잘못이 있다면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징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법조계의 제 머리 깎기 릴레이’의 저변에는 국민들에게 ‘재판은 공정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지 않으면 국민들이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란 절박한 현실 인식이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에서 불과 200여 킬로미터 떨어진 대구의 변호사회는 사법부 신뢰 회복이란 법조계 화두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듯하다. ‘박 판사를 투입한 결정이 실제 재판에 영향을 미쳤는지’, ‘검찰이 박 판사에게 유죄를 묻는지’ 등은 대구변회 결정에 영향을 주는 조건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재판은 공정해야만 하지만, 공정해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사법부가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재판의 ‘공정성’이나 ‘형평성’과 같은 이 사회를 지탱하는 최후, 최고의 가치들이 공염불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대구변회 관계자와의 애매한 통화가 끝난 뒤 꼼꼼히 생각해보았다. A로펌에 대한 대구변회의 태도는 ‘신중함’일까? 아니면 ‘대구의 김앤장’으로 불리는, 대구지법원장과 대구고법원장 출신이 이끄는 지역 대형 로펌에 대한 ‘감싸기’ 일까? ‘제 식구 감싸기’ 보다 ‘제 머리 깎기’가 더 필요한 때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