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이 여름휴가 후 첫 국무회의에서 휴가 중 읽은 책이라며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을 언급했다. 그 후 이 책 저자인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이만열) 아시아인스티튜트 소장이 정부 고위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다. 지난달 13일 중앙공무원연수원에서 진행된 특강의 주요 내용과 페스트라이쉬 교수의 단상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지난 8월 4일 11시쯤 회의 약속 장소로 부리나케 가는 도중에 내 스마트폰에 친구로부터 온 이상한 메시지가 떴다. “대통령이 너의 책을 언급했어!”

오바마 대통령이 한글로 된 내 책을 읽었다는 것은 아닐텐데,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 그때는 도무지 박 대통령이 왜 내 책을 언급했을지 얼른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약 두 시간 후 나는 대통령이 하계휴가 이후 첫 국무회의에서 나의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이란 책을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창조경제’ 후반기 정책에 관한 논의의 중심 과제와 연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자면, “한국이 일등국가로 도약하고 국제사회에서 가치를 창조하고 세계경제 뿐만 아니라 예술과 사회에서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느냐 아니냐는 현재의 우리들에게 달려있다.”

한국 정부 최고위 직에 있는 분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것은 영광이었다. 나처럼 고전문학과 유교철학을 전공한 학자의 생각을 현실 정책 분야에도 받아들인다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는 한국과 중국이 전통적으로 그랬듯이 현실 정책에 관한 토론에서 문학 분야에서 훈련받은 지식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꿔 왔다.

국무회의에서 박대통령이 내 책을 언급한 이후 가장 흥미로운 결과는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의 초대였다. 대통령의 발언 바로 다음 주에 시작된 중앙공무원교육원의 정부 고위 관리를 대상으로 한 특강 시리즈에 연사로 초대를 받은 것이다.

이날 특강에서 나는 한국의 전통에 내재해 있는 가치, 즉 과거 조선시대 학자들의 글에서 찾을 수 있는 깊은 진실을 어떻게 한국의 미래를 위해 재현시킬 수 있는가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번 특강은 그동안 한국을 경험한 내게도 깊은 영감을 준 경험이었다. 나는 한국이 과거의 탁월한 지혜 속에서 미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 인류에게 영감을 불어 넣어 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특강 전문>

한국을 운영하시면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에 바쁘신 공무원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릴 기회를 갖게 되어 저로서는 비할 바 없는 큰 영광입니다.

저는 지난 10년간 수차례 한국 정부 관료들과 함께 일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 인생의 가장 보람된 경험 중 하나였습니다.

2005년 워싱턴 D.C. 한국대사관에서의 일을 시작으로 6곳의 다양한 정부 부처와 10곳의 정부 산하 연구소 들뿐만 아니라 충청도, 경기도, 대전,광주,울산, 서울 시 등과도 함께 프로젝트와 세미나를 해 보았습니다. 저에게는 풍부하고 보람된 경험이었습니다.

저와 가까운 친구들도 많이 한국 정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친구들이 과도한 업무에도 불구하고 놀랄 만한 일들을 성취해 내는 것에 놀라곤 합니다.

저의 가족 중에도 공무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무원하면 저의 외할아버지가 떠오릅니다. 그분은 룩셈부르크에서 세무청 차관을 지내셨습니다.

저는 그분을 뵙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계십니다. 그분은 화가가 되고 싶으셨지만 공무원을 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한국과 같이 룩셈부르크는 프랑스와 독일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룩셈부르크를 점령했을 때 저의 외할아버지께서는 나찌당원이 되길 거부한 몇 안 되는 공무원 중 한 분이셨다고 합니다.

그 이유로 그 분은 관직을 떠나야 했고, 잡일로 연명을 하셨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 후 직장으로 복귀하셨지만 보상은 받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셨다고 합니다.

오늘날 한국은 막중한 순간에 처해 있습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고령화는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외국 자본과 외국인들이 홍수처럼 한국으로 밀려 오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은 한국의 개조와 정부 자체의 개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부의 편중, 고령화 사회, 젊은 세대에 대한 무관심은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도전입니다. 모든 한국인이 제 몫을 다해야 하겠지만, 이런 도전에 대한 응전을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하는 분들은 바로 여러분 공무원들입니다.

위기의 상황에선 어디에선가 변화가 반드시 일어나야만 합니다. 변화는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작은 그룹 내 여러분이 될 것입니다. 정부는 위기에 처했을 때 국민을 단결시키고 새 길을 제시하고 실행시키는 국가의 뼈대입니다.

저는 한국 문화에 매혹된 외국인입니다. 그러나 저를 한국으로 이끈 것은 김치나 한류 드라마나 소녀시대가 아닙니다. 한국의 위대한 유교 전통입니다.무엇보다도 좋은 정부에 대한 조선 시대 지식인(선비)들의 공헌이 제게는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저는 십 년 전에 제게 영감을 준 다산 정약용 선생의 글을 번역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다산의 글을 통해 진정한 학자를 발견했습니다. 다산은 일반인들을 위해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들고자 헌신하셨습니다. 그분은 정치에 몸 담고 있을 때도 결코 인류애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조선 왕조는 오백 년간 높은 수준의 정부를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대대로 학자와 관료를 키웠습니다. 그들의 태도는 겸손했고 봉사에 대한 깊은 열정을 유지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단기 계획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도 수 년 앞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많은 정치가나 사장 들의 목표는 즉각적인 만족입니다. 그때그때 시장의 요구에 맞춰 결정을 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음식을 낭비하고 성형수술이나 어리석은 게임에 탐닉하는 것이 경기를 부양시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학생 때 읽은 위대한 한국이 아닙니다. 이런 근시안적인 한국에겐 미래가 없습니다.

조선 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장기 계획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빠르게 성취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여기고 단기 계획만 세우는 세상이 되고 만 듯합니다. 이제는 그만합시다.

한국은 신화에 쫓기고 있습니다. 이 신화 때문에 과거의 문화와 철학에서 훌륭한 점을 찾아내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이 신화는 다름아닌 선진국을 향한 눈 먼 질주입니다. 무엇보다도 과거에 놀랄 만한 한국을 만들어낸 문화를 버렸습니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1970년대 한국이 갑자기 출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은 그 이전의 한국의 성취에 대해서는 알리려 하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이 흔히 외국에 알리는 것은 ‘한강의 기적’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기술은 1970년대에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한국은 이미 13세기에 수학과 엔지니어링에 있어서 당대 가장 앞선 국가 중 하나였습니다. 그 전부터도 한국은 과학의 탁월한 전통이 있었습니다.

한국이 1960, 1970년대 고도 성장 계획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인들이 열심히 일하고 나라를 사랑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한국은 거버넌스에 있어서 제도 혁신을 포함해 조선 시대를 관통했던 탁월한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조직과 정책 실행에 능한 것입니다.

한국의 민주화도 비단 1980년 학생 운동 때문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15세기 이래로 (그 이전에도) 이 땅의 지식인과 학생 들은 거버넌스의 투명성과 법치 그리고 힘의 균형을 주장해 왔습니다.

이러한 과거를 인정하고 보면 기술과 외교와 행정과 민주주의는 한국에 수입된 새로운 상품이 아니고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 수 있는 오래된 전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2 세기 프랑스 학자 베르나르 드 샤르트르(Bernard de Chartres)의 글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현대인들은 고대인들보다 더 멀리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현대인들이 모르고 있는 과거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 처럼 과거를 알아야 한다."

제 역할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저는 한국을 변화시킬 수도 없고 한국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께 한국에는 위대한 전통적인 거버넌스가 있었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이 관료들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창조한 세종과 정종, 영조와 같은 지도자를 배출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시작한 프로젝트를 이제 우리가 위임받아 실행시켜야 할 때입니다.

전통은 이곳에 있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여러분들 바로 곁에 있습니다. 전통에 다가갈 수 있고 다가가야 합니다. 한국을 위해 동아시아를 위해 세계를 위해 새로운 길을 상상하고 만들어서 실행합시다.

어디서 시작하냐구요? 바로 여러분들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시스템을, 나아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길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위아래나 주변에 진정한 개혁이나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만의 승진이나 사소한 일에만 신경쓰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어디서 나오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들은 어디에서도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잠재적인 지도자에서 배제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무관심해 보이는 사람들이 사실은 속으로는 거대한 지지자들이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과거에 있었던 정부 내 위대한 지도자들에게서 영감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정신은 아직도 바로 여기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대한 진가를 몰라줘서 쓸쓸해 하는 분들을 위해 논어의 한 구절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

덕있는 사람은 고독하지 않고 분명히 친구들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자신은 더 나은 한국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데 시스템에 막혀 완전히 고립돼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 옆에는 말로 표현은 하고 있지 않지만 그분의 덕을 지지하는 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여러분이 성공하길 원하며 여러분이 더 나은 방향으로 그분들을 이끌어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당신은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당신이 길을 보여주시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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