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일정상 밀린 것 뿐” 해명…재계 반발에 후퇴했다 분석도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를 독려하는 ‘스튜어드십코드’의 연내 도입이 사실상 무산됐다. 금융위원회는 사모펀드 활성화와 크라우드펀딩 도입, 주가연계증권(ELS) 규제 등 우선순위 정책에 스튜어드코드 도입이 일정상 밀렸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재계 반발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스튜어드십코드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가 의결권 행사를 통해 상장기업의 건전한 지배구조 구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으로 자의적인 판단이 아닌 세부기준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한 가이드라인이다. 미국의 엔론 회계부정 사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에서 채택되고 있으며, 2002년 호주에서 처음으로 도입됐다. 일본, 말레이시아, 스위스는 증시부양책의 일환으로 2014년 도입했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당초 6~9월 중 스튜어드십코드를 제정할 계획이었으나 내년초 도입으로 일정을 연기했다. 지난 4월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자본시장 개혁 과제 중 하나로 스튜어드십코드 제정을 지목한 바 있다. 임 위원장 취임 이후 금융위는 자본시장연구원, 국민연금 등과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신제윤 전(前) 금융위원장도 지난해 11월 한 심포지엄에 참석해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는 실질적으로 취약점이 많다는 것이 냉정한 평가"라며 "스튜어드십코드를 통해 지배구조를 건강하게 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도입이 지연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일정상 연기된 것일 뿐"이라며 "당장 더 시급한 과제들이 많아 미뤄졌다고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재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자칫 잘못하면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대기업을 좌지우지하는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면서 "추후 공청회가 열리면 전경련 등 재계 단체를 중심으로 엄밀히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6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헤지펀드 엘리엇이 반대 의사를 표명한 이후 재계 일각에서는 스듀어드십코드 도입과 관련해 반대 의사를 금융위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 등 국내 기관투자가 전부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함으로써 합병안은 원안대로 통과될 수 있었지만 스튜어드십코드가 제정된 상태였다면 일부 기관은 반대 의사를 표명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삼성물산의 자산가치가 제일모직보다 큰 상태에서 합병비율은 불리하게 나왔기 때문에 스튜어드십코드가 제정돼 있었다면 국민연금이 찬성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스튜어드십코드를 통한 과도한 경영권 침해 논란을 피하기 위해 기관내에 '스튜어드십 운영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고, 위원회를 통해 적합한 원칙 하에서만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할 방침이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스튜어드십코드가 제정된다고 곧바로 기관이 반대의견만 내게 되진 않을 것"이라며 "현재 우리나라는 의결권 행사시 규제가 많아 기계적으로 찬성만 하는 상황인데, 이를 개선하려는 의도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